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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니마스

씁쓸하면서 달달한

by 기동포격 2020. 6. 8.

「마, 마도카……미안. 이거 혹시, 마도카 네 거였어……?」


「――하아. 또 저지르셨나요. 대체 언제가 되면 착각을 안 하게 될 건가요? 아니면 일부러 노리고 하는 건가요?…………변태」


「오, 오해라니까……거기다 마도카 너도 굳이 일부러 헷갈리기 쉬운 곳에 놔둘 필요는 없잖아?」


「하아? 지금 와서 그런 변명을 늘어놓는 건가요? 보기 흉해요. 미스터・변질자」



 ――음. 히구치랑 프로듀서?


 사무소 문을 여니 히구치가 페트병 커피를 한 손에 들고 프로듀서한테 따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히구치, 프로듀서」


「어라? 토오루――오늘 오프 아니었어?」



 프로듀서가 내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 응――DVD를 봤으니 감상을 전하자 싶어서」


「아아……」



 내가 DVD를 한 손에 들어올리며 대답하자 프로듀서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히구치를 보니 독기가 한풀 꺾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맞다. 히구치는 왜 화를 내고 있었던 거야?」


「――여기 있는 사람이 내 커피를 멋대로 마셨어」



 문득 신경이 쓰였던 것을 물어보니 히구치가 얼굴을 돌리며 그렇게 투덜댔다.

 ――또 저질렀다는 건 무슨 의미인걸까.



「――……흐~응」



 히구치와 프로듀서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히구치는 여전히 시선을 딴 곳에 두고 있었고, 프로듀서도 난처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응. 뭔가 가슴이 조금 답답하다.



「――프로듀서, 또 저질렀다는 건 무슨 의미?」


「응?――아아, 저번에도 마도카의 커피를 착각해서 마셔버렸거든……」



 프로듀서가 죄를 지은 것 같은 표정으로 히구치를 본다.

 히구치는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히구치, 그런 걸 했던 거야?


 히구치도……진심으로 싫었다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났을 리가 없을 텐데.

 좀 더 눈에 잘 띄게 표시를 했을 텐데.



「――아~……히구치?」

「――……딱히」



 히구치한테도 물어봐도 고개를 가로저을 뿐.


 그러고 보니 요즘, 히구치가 프로듀서랑 같이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지금 같이 히구치가 프로듀서한테 따지고 있는 모습이 많지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히구치한테 있어 드문 일.

 평소라면 별 신경도 안 쓰는 느낌인데. 



「……것보다 히구치. 요즘 들어 그 커피, 자주 마시고 있지?」


「하아? 뭘, 갑자기――」



 히구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혹스러운 기색이 가득 담긴 눈을 본다. 


 요즘 내가 자주 마시는 메이커.

 프로듀서도 자주 마시는 메이커.



「전에는 카페오레였는데」


「――큭…………」



 히구치가 눈을 재빠르게 딴 데로 돌렸다.

 거북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렇구나……히구치도, 그랬었구나……



 갑작스레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히구치가 보여줬던 태도가 수긍이 간다.


 ――그리고 처음으로 히구치를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저, 저기――토오루? 마도카?」



 우리가 서로 침묵을 지키자, 프로듀서가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걸어왔다. 



「……아,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히구치, 그거 필요없으면 내가 가져갈게」


「――하아? 어, 앗……」



 히구치한테서 페트병을 빼앗아 입으로 가져간다. 

 어안이 벙벙해 하는 히구치와 프로듀서를 곁눈질 하며 커피를 소리 내어 마셨다.

 평소 마시던 것보다 아주 조금 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후훗. 조금, 위험해.



「……음, 목이 말랐었어. 고마워」


「――큭!」


「토오루!?」



 히구치가 나를 보며 숨을 삼키고, 프로듀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응? 둘 다 왜 그래?」


「아사쿠라, 왜――……」



 히구치가 쉰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심플.



「그치만, 치사하잖아」


「――하아? 뭐야, 그게……」



 히구치가 성난 표정을 짓는다. 

 치사해. 치사하다고 히구치――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데.



「후훗. 히구치도 말이야, 똑같지?」


「――뭐가――……」



 ――히구치는 조금 알기 쉽단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나랑 똑같아」



 딱히 싫은 기분은 아니다.

 히구치도 똑같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히구치는 조금 알기 쉽단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사무소에 왔다 싶었는데 갑자기 커피를 빼앗겼다. 

 내가 입을 대고……그 사람이 마신, 페트병.



「――그러니까 말이야, 나랑 똑같아」



 토오루는 항상 보여주는 그 표정을 짓고 있다.

 문득 그 사람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이 미스터・벽창호.



「――똑같다는 게 뭐야? 딱히 관계없잖아?」



 토오루는 다시 한 번 커피를 마신다.

 과시하듯――부채질하듯――



「아~……히구치가 그걸로 됐다면, 그래도 상관없지만」


「…………하아」



 ――토오루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하고는 딱히 관계없다. 

 얼마 전까지는 토오루가 속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했었지만, 지금 와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조금, 아주 조금……재미없다.



「마도카……? 그게, 커피 다시 사올까? 아니면 다른 걸 갖다 줄까?」



 고개를 숙이고 침묵에 빠져버린 나를 그 사람이 얼굴을 내밀며 들여다본다. 

 토오루는 어느새인가 사무소 소파에 앉아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람을 실컷 농락해놓고는――아니, 토오루 안에서는 이미 결론지었겠지.


 ――약한 복수를 하더라도, 벌은 받지 않을터.

 ――프로듀서 당신도……내가 이런 기분이 되게 한 책임 정도는 져주세요. 



「아니, 됐어요」



 책상에 놔뒀던 또 하나의 커피를 잡는다.

 토오루를 슬쩍 보니 토오루 답지 않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대신 이걸 마실게요」


「어? 앗――마도카!?」



 아연실색하는 그 사람을 곁눈질 하며 페트병에 입을 대고 커피를 단번에 들이킨다.


 ――역시, 쓰다……


 기세를 타 마시기는 했지만 역시 맛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걸로, 둘 다」



 아주 조금, 내 안에서 뭔가가 채워진――그런 기분이 들었다.



「――히구치?」


「…………. ――아무것도 아니야


「아~……그렇구나」



 무심코 입밖으로 나와버린 말이지만, 토오루한테는 들렸을지도 모른다.

 ――뭐, 별로 상관없다.



「마, 마도카? 그거 내가 마신 건데……」


「네. 제 건 당신이 마시고 거기다 아사쿠라한테 뺏겨버렸으므로, 어쩔 수 없이 마셨어요」



 조금 갈팡지팡하는 그 사람을 보고 있으니, 가슴 안쪽에 있던 응어리가 다시 약간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뭔가요. 저랑 간접키스를 했다고 당황하고 계신가요?」


「아, 아닌데……아니, 그저 내 커피가――……뭐, 다시 한 번 사오면 되나……」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죄책감이 피어오른다.



「――아사쿠라」


「응?」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토오루한테 말을 건다. 



「……커피, 사왔지? 그거, 프로듀서한테 줘」


「아~……응――여기요, 프로듀서」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까지 마시고 있던 거랑 똑같은 메이커의 커피.



「……토오루. 커피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걸 마시면 됐던 거 아냐……?」


「……후훗, 미안. 하지만――알아줬으면 했으니까――」


「프로듀서, 이걸로 문제없죠?」



 토오루의 말을 차단하듯 비집고 들어간다.

 아직, 전하기를 원치않으니까――



「그래, 문제는 없지만……아니, 하지만 나만 새 걸 받는 건 왠지 미안한데……」



 미스터・호인.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조금도 없는데.



「――……밥」


「어?」


「――찝찝하시다면……밥을, 사주시지 않을래요?」



 무심코 입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내가 먼저 제안을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그 사람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민폐였나요? 그렇다면 딱히――」


「아, 아니아니. 그렇지 않아. 응, 가자」



 평소처럼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들키지 않게 마음을 다잡는다.



「――?」



 ――문득 뒤에서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토라진 표정을 지은 토오루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히구치. 그거, 치사해」



 ――하아. 치사한 건 서로 마찬가지잖아?

 그쪽에는 어드밴티지가 있으니 이 정도는 눈감아줘

 하지만――……



「……어차피 따라올거잖아?」


「아~……응. 따라갈 거야」



 ――뭐, 지금은 아직……이걸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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