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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벽람항로

벽람항로 : 착임

by 기동포격 2019. 10. 26.

평일 저녁. 

저녁시간은 원래 시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시끄러운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적 한가운데로 돌진해 들어가면서 적함을 향해 주포를 쐈지. 포탄은 정확히 적의 순양함을 직격, 그 순양함은 전투능력을 잃고 함열에서 이탈해 버렸다니까. 다른 한 척의 순양함이랑 항공모함은 내가 항공기를 상대하는 동안 도망쳐 버렸어. 즉 나 혼자서 적의 기동부대를 격파해 버렸다는 거야!!」







「대단하세요! 언니!」


「흥! 최강의 16인치 주포를 가진 넬슨급 네임쉽으로서 당연한 거 아니겠어?」



넬슨이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드높이며 전과를 자랑하는 모습을,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엔터프라이즈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넬슨이 저렇게 흥분하는 건 처음 보는군」


「그럴 만도 하지. 꽤나 큰 전과를 올렸으니까. 방금 넬슨이 말했듯이 넬슨은 단독으로 적 기동부대와 맞섰어. 그 결과 중순양함 한 척과 항공모함 한 척에 피해를 입혔고, 중순양함 한 척을 나포했지」


「특히 적함을 나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부대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해」


「지휘관은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어?」


「일단 연락은 해놨어. 아주 기뻐하면서 특별보상까지 언급하던데?」


「흐~응」


「흥미가 없어 보이는군. 엔터프라이즈, 특별 보상이라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지 않아?」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웨일즈, 너도 지휘관을 잘 알고 있잖아. 기껏해야 씹다만 껌이나 빈 담뱃갑이겠지」


「땡. 특별 보상은…바로 반지를 건네겠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엔터프라이즈가 포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웨일즈를 올려다보았다.



「바, 반지?」


「그래. 만약 그렇게 되면 전함으로서는 최초로 반지를 받는 아이가 되는 거야, 넬슨은」



반지. 

지휘관과 서약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물건. 군함의 인격체들은 이 서약과 반지라는 것에 조금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지휘관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 때문에 반지를 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지를 받는 경우 함선의 강화와 개량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모든 함선이 개량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더욱더 강해지고 싶어 하는 인격체들은 '반지' 라는 물건에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웨일즈한테서 반지라는 단어를 듣자 엔터프라이즈는 넬슨이 저렇게 흥분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넬슨이 지휘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반지를 받았다는 것은 성능 향상을 받을 수 있다는 보증을 받은 것이었다. 거기다 전함 중에서 반지를 최초로 받았다는 명예까지 얻은 셈이었다. 넬슨으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었고, 로열 네이비로서는 진영 간의 알력 다툼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진수부에 나름 많은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는 나도 아직 못 가진 반지인데 말이야…」



엔터프라이즈가 먼 산을 바라보는 눈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우리 진수부 규모가 작아서 대규모 작전도 별로 없는데다, 지휘관이 이글 유니온 함대에 조금 인색하기는 하지」


「조금? 말은 똑바로 하자, 웨일즈. 이 진수부에서 수가 가장 많은 것도 우리고, 가장 고생하는 것도 우리인데 지휘관은 그걸 전혀 몰라준다고. 함대 내에서 지휘관이 로열 네이비만 편애한다고 얼마나 불만이 많은 줄 알아? 심지어 지휘관이 사쿠라 엠파이어 출신이라 유니온을 차별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


「후훗, 진정해. 지휘관도 너희들의 노력에 깊이 감사하고 있어. 비서관인 내가 하는 말이니 믿도록 해. 분명 얼마 안 있어 그 노고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비서관. 

이름만 들으면 기업에서의 비서를 생각하기 쉽지만, 진수부 내에서 비서관이라는 직함은 결코 그렇게 가벼운 자리가 아니었다. 지휘관의 뒤를 잇는 2인자이자 지휘관이 자리를 비웠을 경우 지휘관 대신 지휘를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다.


  

「지휘관이 감사를 한다고? 아무리 웨일즈가 하는 말이라도 그건 믿기지가 않는데…」


「항상 놀기만 하는 칠칠치 못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폼으로 지휘관이라는 직책을 단 건 아니야. 내 말을 믿어봐」


「…웨일즈가 그렇게 말한다면…」



웨일즈의 성격을 봤을 때 그녀가 하는 말이 거짓말일리는 없었다. 엔터프라이즈는 한숨을 쉬며 포크를 다시 꺼낸 뒤 식사를 재개했다. 웨일즈는 그런 엔터프라이즈를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응?」


「그 나포 된 군함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일단 군함 자체는 무장을 철거한 뒤 아카시의 도움을 받아 수리를 하는 중이고…인격체는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네?


「비서관인 너도 모른단 말이야?」


「소류랑 히류가 데리고 갔는데 장소까지는 특정할 수 없어」


「지휘관은?」


「전과 보고를 받은 뒤로 보이지 않아」


「아아~. 역시 믿음이 안 가, 웨일즈~. 네 말을 진짜 믿어도 괜찮은 거야~?」


「이것만 먹고 찾으러 가자. 내일은 꼭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있거든. 오늘 밤에 침대에 묶어놔야 내일 도망을 못 치지」


「…알겠어」



대화를 끝낸 웨일즈와 엔터프라이즈는 식기를 반납하러 가기 위해 일어섰다. 넬슨의 자기자랑은 어느새 지휘관의 험담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수부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골짜기. 

깎아지를 듯 한 절벽 사이에 난 길을 지휘관은 걷고 있었다. 양쪽으로 높이 솟아오른 절벽 때문에 낮에도 어둑한 길을 한참 걸어가다 걸음을 멈춘 지휘관은, 주위를 둘러본 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절벽 사이로 튀어나온 나뭇가지를 건드렸다. 그러자 절벽이 갈라지면서 통로 하나가 나타났고, 지휘관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그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휘관이 통로 안으로 사라지자 절벽은 다시 원래대로 닫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함이 절벽 사이의 공간을 채웠다.




통로를 10분 쯤 걸어가자 커다란 철문이 나타났고, 그 철문 앞에 소류가 서 있었다. 철문 앞에서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던 소류는 지휘관을 보자 곰방대를 입에서 떼고는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지휘관」


「나는 옛날에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먼 곳에 거처를 마련하라고 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땀을 줄줄 흘리며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지휘관. 



「다른 인원들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덕분에 큰 공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수부 인원들 중에서 이곳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지휘관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대답하는 소류.



「그건 그렇지. 그래서? 심문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예상한대로 지독합니다. 입을 열 생각을 전혀 하지 않네요. 그녀의 고지식함을 봤을 때, 아마 굴복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히류로서도 힘들다라…」


「그녀의 고지식함과 긍지는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니까요」


「그랬었지. 더욱더 흥미가 생기는 걸? 그럼 들어가 볼까?」


「이쪽으로」



소류가 문을 열고 앞장선다. 지휘관은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소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물고 있는 파이프 담배를 본 소류는 살짝 미소 지었다.



「선물은 마음에 드십니까」


「생각보다 괜찮네.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궐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이군요」



그렇게 둘이서 오순도순 담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복도 끝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복도 끝에는 아까보다 작지만 역시 둔한 빛을 내는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류는 문으로 다가가서 문에 달려 있는 다이얼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자 비릿한 냄새와 함께 악취가 퍼져 나왔다. 지휘관은 눈썹을 잠시 꿈틀거렸지만 곧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 가운데에 여성이 매달려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쇠사슬이 여성의 손목을 감싸고 있었고, 여성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로 빨갛게 물든 제복과, 바닥에 그녀가 흘린 것으로 보이는 구토물과 피가 흥건한 것으로 볼 때, 결코 멀쩡한 상태는 아닐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지휘관은 주위를 둘러보다 한 책상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 책상 위에는 기다란 일본도 하나가 놓여 있었고, 책상 바닥에는 피가 묻은 채찍과 부러진 각목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주 화려하게 해줬군. 히류」


「전 단지 지휘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히류가 지휘관 옆으로 다가오며 그렇게 말했다. 




「좋아좋아」



지휘관은 히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숨을 거칠게 쉬는 것을 보니 살아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 아이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타카오. 타카오급 중순양함 1번함입니다」


「넬슨이 참으로 거물을 잡아왔어. 이 정도 거물이면 반지 하나가 아깝지 않지」



지휘관이 타카오라 불린 여성의 턱을 잡고는 들어올렸다. 얼굴은 멍투성이에 피가 굳어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붓기도 엄청나서 원래 어떤 얼굴이었는지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휘관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은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조심하세요, 지휘관. 자폭용 기폭장치를 몸에 숨겨놨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걸 제일 먼저 검사해 봐야하는 거 아냐?」


「일단 대충 검사는 해봤는데, 여성은 숨길 곳이 많으니까요. 가령 아래쪽-」


「응응, 거기까지」



말이 끝나기 전에 소류가 손으로 히류의 입을 막는다. 히류는 당황하며 왜 이러냐는 눈빛으로 소류를 쳐다보았다. 소류는 그런 동생을 보며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타카오. 내가 궁금한 게 많은데 말이야. 내가 하는 질문에 순순히 대답을 해준다면 널 해방시켜 줄 것을 약속하-」



지휘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타카오가 지휘관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기 때문이다. 



「그 더러운 입으로 나를 부르지 마라, 귀-」



타카오의 말 또한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빠악!



지휘관 곁에 서있던 히류가 바로 타카오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기 때문이다. 히류의 강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타카오의 머리채를 잡고 마치 죽이려는 듯 안면을 강하게 몇 번이고 강타했다.



「감히! 이 분이! 누구인 줄 알고!」



무자비한 폭력이 타카오에게 쏟아졌지만, 타카오가 할 수 있는 것은 맞을 때마다 전해져 오는 고통을 받아들이며 신음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뭐야, 히류. 아직 멀쩡하잖아. 네 교육 실력도 많이 죽은 거 아냐?」


「전 상냥하니까요」



히류가 지휘관 쪽으로 돌아보며 방긋 웃는다. 지휘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자 히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앗, 안 믿으시는 거예요? 전 정말 상냥하다니까요! 언니도 뭐라 말 좀 해봐!」


「응?」



손수건으로 지휘관의 얼굴을 닦던 소류의 머리에 물음표가 띄워진다. 



「아아, 언니랑 지휘관이 괴롭혀!」


「저러면서도 손이 멈추지 않는 건 정말 히류답네」


「후훗.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제 동생이랍니다」


「언니랑 지휘관이 나만 빼고 꽁냥거려!」



그렇게 히류가 불만스럽게 투정부리는 소리와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몇 분간 계속되었다. 




「자자, 이제 그만. 그러다 진짜 죽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지휘관, 이 자는 지휘관을 모욕했다고요」


「히류」


「…알겠습니다」



히류가 뒤로 물러선다. 지휘관은 다시 타카오에게 다가가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타카오…너한테도 돌아갈 조국과 가족이 있지 않나? 여기서 목숨을 헛되이 버리면 쓰나. 여기서 헛되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살아 돌아가서 다시 조국을 지키는 일에 힘쓰는 것이 더 낫다 생각지 않아?」


「…큭큭큭」



타카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웃기는…궤변이군…귀축…나를…너희 같은…더러운 조국의 배신자들과…똑같이…보지…마라」



히류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올라가는 주먹을 소류가 잡아서 내렸다.



「이 타카오…죽는 한이…있더라도…절대 조국을…배신하지…않을 것이다. 나는…네놈에게…말해 줄 것이…없다」


「아, 어려운데…어떻게 생각해? 소류, 히류」


「어차피 입을 열지 않는다면 포로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처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타카오급은 사쿠라 엠파이어에서도 사이가 좋기로 유명했는데, 구하러 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럼 미끼로 쓸 수 있을 텐데」


「다른 자매들이 타카오를 구하고 싶어도 위에서 허락을 해줄 리가 없지.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군함 한 척을 위해 위험을 무릎 쓰기보다는, 다시 건조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효율적일 테니까」


「너희들은 옛 동료를 앞에 두고 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구나…」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니까요」


「그런 종류의 문제인가?」




지휘관이 일어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류가 다가와서 묻는다. 



「처분」


「승무원들은?」


「전부 끌고 와서 재교육 시켜. 쓸데가 있으니. 뒤처리는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지휘관이 문밖으로 나간다. 소류가 히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히류는 책상에 놓여있던 타카오의 일본도를 들고 타카오한테 다가갔다.



「마지막 자비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있나?」


「……」


「…하나만…물어보지」


「뭐지?」


「어째서…조국을 배신…했나? 조국보다…저 남자가…더 중요했나?」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네요, 타카오」


「…소류」


「당신은 지난 2차 대전쟁 때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군함입니다. 그 때 제국이 얼마나 한심한 추태를 보였는지 끝까지 보고서도, 아직도 그 제국에 충성심이 남아있는 당신이 저로서는 신기하네요」


「꾐에 넘어가 해군이라고 불러주기도 부끄러운 해적 수준의 철혈과 동맹을 맺고 세이렌과 벽람항로를 상대한다?」


「당신은 정말로 승산이 있다고 보시나요? 저희는 배신을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이에요, 타카오. 승산과 상식이 있는 쪽으로」


「헛소리!」



타카오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진다. 쇠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듯 타카오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소류! 우리는…선택을 하는…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군인! 명령을…따르는 존재다! 승산이고 뭐고…그딴 건 상관없어! 죽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죽는다! 우리는…그러한 존재다!」


「조국을 위해…미끼가 되라고 하면 미끼가 될 것이고…특공을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것!」  


「제 몸 하나…살기 위해…조국을 배신하다니! 하늘에…부끄럽지도 않나! 배신자!」


「……」


「…아무래도 당신과는 말이 안 통할 것 같군요. 당신보다 차라리 아타고나 쵸카이가 왔었으면 일이 더욱 원만하게 풀렸을지도 모르는데」


「내 자매들을…모욕하지 마라!」



타카오가 이를 갈면서 소류에게 덤벼든다. 타카오를 묶고 있는 쇠사슬이 끊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히류, 어서 처리하도록 해. 저러다  풀려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


「응」


「내…호국의 영령이 되어…너희들이 죽는 모습을…반드시 볼 것이다! 네년들이…절대 곱게 죽지 않게…저주하리라」


「그래? 유감이군.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이라」



히류가 일본도를 집에서 단번에 빼내어 타카오의 배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빼낸 후 다시 한 번 강하게 가슴에 찔러 넣었다. 타카오는 자신을 찌른 히류를 원망과 증오가 담긴 눈으로 쏘아보며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입에서는 피거품만이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얼마 안 있어 타카오가 눈의 빛을 잃고 고개를 떨어뜨리자 타카오의 몸이 빛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몇 분 안 있어 몸은 완전히 사라졌고, 네모난 큐브 하나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히류의 손에 들려 있던 일본도도 곧 사라졌다. 



「난 이걸 아카시한테 갖다주고 올게. 뒷정리를 부탁해」


「알겠어. 언니」



소류가 큐브를 회수한 후 문을 닫고 나가자 히류가 박수를 쳐 만쥬들을 부른다. 얼마 안 있어 방 안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깨끗하게 변했다. 빠진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 히류는 쇠사슬을 잠시 바라보다 곧 고개를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한 달 후.

 

어떤 여성이 진수부 본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흰 제복과 흰 리본이 돋보이는 포니테일, 그리고 한 손에 든 기다란 일본도. 


지도를 보며 복도를 걷던 여성은 어떤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적지가 맞는지 표지판을 한 번 확인하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성 한 명과 여성 세 명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됐다. 남성은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를 보자 미소를 지었지만, 비서관이라는 명패가 놓인 책상에 앉아있던 금발의 여성은 경악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경악하던 금발의 여성은 곧바로 제정신을 차린 듯 검을 빼들려고 했지만, 옆에 서 있던 여성에게 저지되었다.



「히류, 어째서 말리는 거야!? 저 인격체는-」


「잠시만 있어봐, 웨일즈. 그녀는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부류니까」


「하아? 대체 무슨?」



웨일즈와 히류가 아옹다옹하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여성은 눈길도 주지 않고 정면에 있는 남성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책상 앞에 멈춰 절도 있게 경례 하자, 남성도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경례를 받아주었다. 

 


「어서와. 이곳에 착임한 것을 환영하지」


「소인은 타카오급 중순양함 1번함 타카오라고 하네. 이렇게 보여도 무수한 전장을 극복해왔지. 소인의 장갑과 화력, 안심하고 의지하도록」


「한 때 세계 최고의 중순양함이라고 불렸던 타카오급, 그것도 네임쉽을 우리 진수부에 맞이하게 되어서 영광이야.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도록 하지」


「음」


「소류? 타카오에게 지낼 곳과 자신의 군함을 안내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타카오」


「음. 고맙네」



타카오가 소류의 뒤를 따라 방을 나간다. 문이 닫히자 웨일즈가 히류를 뿌리치고 지휘관에게로 달려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저 인격체는 분명 한 달 전에 나포했던 사쿠라 엠파이어의 인격체잖아! 그 인격체가 이곳에 착임이라니!?」


「소류와 히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그녀를 설득했고, 설득 끝에 그녀가 우리 쪽으로 합류 했을 뿐이야. 그렇게 소란 피울 필요 없어, 웨일즈」


「하지만!」


「웨일즈. 난 분명 소란 피울 필요가 없다고 했어」



지휘관이 냉정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한다. 하지만 웨일즈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았다. 다른 국가도 아니고 사쿠라 엠파이어의 군함이 겨우 '설득' 만으로 자신의 조국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웨일즈가 알고 있는 사쿠라 엠파이어의 군인들은 죽으면 죽었지 적에게  쉽사리 항복할 위인들이 아니었으니까.    





계속?



적 진영인 사쿠라 엠파이어의 군함들이 벽람항로에 어떻게 합류하는지 해 본 망상. 일단은 적이었으니 평화롭게 하하호호 하며 합류할 것 같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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