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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벽람항로

지휘관「갈등」

by 기동포격 2019. 3. 6.

이른 아침. 지휘관의 집무실 앞은 평소와 달리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자면 로열 네이비 소속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를 비롯하여 이글 유니온 소속의 엔터프라이즈, 렉싱턴, 호넷, 세러토가 등 모두 이 진수부를 떠받치는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집무실 앞에 모인 그녀들은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서로 수군거리고 있었으나, 엔터프라이즈만큼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POW 「그럼 어제 나왔던 의견대로 내가 대표로서 이 문서를 지휘관에게 제출하겠네. 다들 아무 불만 없겠지?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말에 모두 수근거림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의견을 확인한 POW가 눈을 감고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집무실 문을 노크하려고 했을 때, 옆에서 손이 튀어나와 노크를 하려던 POW의 손을 잡아챘다. 



POW 「…엔터프라이즈?



POW의 손을 저지한 사람은 놀랍게도 엔터프라이즈였다. 집무실 앞에 모였을 때부터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던 그녀는 POW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엔터프라이즈 「꼭…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POW 「하아?



POW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듯 소리를 내었다. 



POW 「지금 와서 무슨 소리야, 엔터프라이즈?


엔터프라이즈 「아니, 우리가 이렇게까지 모여 지휘관을 압박하면서 그녀들, 사쿠라 엠파이어를 내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싶어서 말이야…」


POW 「…그 말이 그대 입에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2차 대전쟁 초기 그녀들을 사실상 혼자서 막아냈으며, 이번 전쟁에서 우리를 배신하고 공격했던 그녀들을 공포에 떨게 한 그대가…그런 말을?


엔터프라이즈 「그건 어차피 지난일이잖아, 웨일즈. 물론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녀들과의 악연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방금도 말했듯이 그건 과거의 일이야. 이제 그녀들은 우리와 똑같이 지휘관 아래에서 명령을 받는 입장이며, 우리 동료-」


POW 「말조심 하게!!」



엔터프라이즈가 꺼낸 ‘동료’라는 단어에 POW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POW 「동료라니! 누구 마음대로 그 배신자들이 동료라는 거지? 난 절대로 그 배신자들을 동료로 인정할 생각이 없어!


엔터프라이즈 「…웨일즈…」



엔터프라이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POW를 쳐다보았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시선도 결코 곱지 않은 게 피부로 느껴졌다. 엔터프라이즈도 그녀들의 마음을 결코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2차 대전쟁 때 자신도 죽음에 문턱에 갔다 온 만큼,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글 유니온 군함들이 사쿠라 엠파이어의 군함들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 그리고 자신들은 군인. 우선시해야 할 것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해권을 거의 빼앗기고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사쿠라 엠파이어 군함들이 지휘관 밑으로 온다는 것은 이쪽의 전력을 늘리는 한편 적의 전력을 빼앗아 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분명 지휘관도 그리 생각해 사쿠라 엠파이어의 군함들을 받아들였을 터. 지휘관의 마음이 그녀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게 엔터프라이즈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POW 「실망이야, 엔터프라이즈. 네가 설마 이렇게 나오다니…」



POW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검집에서 꺼내어 엔터프라이즈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POW 「더 이상 우리의 뜻을 꺽으려 들지 마. 만약 계속 우리를 막겠다면…」



검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POW 「아무리 너라고 해도…널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겠어」



POW의 그 말을 들은 순간, 엔터프라이즈는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미 설득이라는 단어가 통할 상태가 아니었다. 사쿠라 엠파이어에 대한 그녀들의 적개심이 자신의 생각보다 깊다는 걸 깨달은 엔터프라이즈는, 진작에 이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엔터프라이즈가 한 걸음 물러나자, POW는 검을 걷어들이고 엔터프라이즈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문을 노크했다. 



꽈앙!



POW「응?」



하지만 그 순간, 방 안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방문이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큰 소리였다.


지휘관이 상주하는 집무실에서 들린 굉음.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POW「비상사태. 지휘관이 있는 집무실에서 상세불명의 괴성. 리펄스, 지금 당장 지휘통제실로 가서 비상사태를 알리는 싸이렌을 울리도록. 그리고 모두 의장을 갖추어 다시 이곳에 집합해주게. 일단 집무실에는 나와 엔터프라이즈가 들어갈보도록 할 테니」



즉시 상황을 파악한 POW의 세세한 지시. 복도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POW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의장이 보관되어 있는 도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는 지휘관이 걱정되는 한편 POW의 그 빠르고 세세한 지시를 들으며 역시 지휘관이 지휘관 대리를 맡길 만한 위인이라고 감탄했다. 



POW「엔터프라이즈! 멍하니 뭐하나! 바로 돌입힌다!」



POW의 고성에 엔터프라이즈는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잡았다.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들은 문을 발로 힘껏 차서 열어젖히며 신속하게 집무실로 돌입했다. 



POW「지휘관!!」



지휘관을 부르며 집무실로 뛰어들어간 POW와 엔터프라이즈를 맞이한 것은, 항상 웃으며 반겨주던 지휘관이 아니었다. 책상 뒤로 커다랗게 뚫린 구멍.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온 세찬 바닷바람이 POW와 엔터프라이즈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방 안의 상황을 본 POW와 엔터프라이즈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의 비서함을 맡은 애리조나가 의장을 착용하고는 책상 앞에 서서 의자 쪽을 겨누고 있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을 가진 애리조나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란 POW와 엔터프라이즈는 애리조나가 지휘관에게 위해를 가할까봐 그녀를 말리기 위해 다급히 뛰어갔지만, 책상 앞에 도착하고서는 애리조나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연유를 알게 되었다.  



「어머나~. 다들 뭐가 그리 급하셔서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오셨나요~?」



지휘관의 자리에는 지휘관이 앉아있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지휘관의 모자를 쓴 ‘쇼카쿠’가, 철갑탄을 장착한 폭격기 하나를 손에 들고 음흉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쇼카쿠와 애리조나의 갈등은 극에 달한 것이 틀림없었다. 소금내가 깃든 바닷바람이 들어오는 구멍이 바로 그 증거였다. 방금 전에는 빗나갔지만 쇼카쿠가 다시 한 번 애리조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이번에는 쇼카쿠의 머리가 집무실 벽과 같이 날아가 버릴 것이 자명했다. 


엔터프라이즈는 쇼카쿠의 손에 들려있는 폭격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철갑탄을 장착한 그 폭격기는 애리조나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아마 오늘 비서함이 애리조나인 것을 알고 일부러 폭격기를 꺼내고는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애리조나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기대하면서…


POW는 바로 상황 정리에 들어갔다. 지휘관 자리에 앉아있는 정규항모는 이런 상황에서도 애리조나를 충분히 도발할 수 있는 여자였고, 애리조나가 도발에 넘어가 쇼카쿠를 처리해버리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다. 물론 POW의 입장에서는 그러는 편이 좋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렇게 했을 경우 애리조나 또한 무사할 수 없었다.



POW 「애리조나, 그 의장 해제해」


애리조나 「하지만!」


POW 「지휘관 대리로서 명령한다!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싫지 않다면 지금 당장 해제해!」


애리조나 「……크윽」



POW의 고성에 애리조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의장을 해제한다. 주인의 힘을 잃어버린 의장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엔터프라이즈 「…밖으로 나가 잠시 머리를 식히도록」


애리조나 「…네」



애리조나가 힘없이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집무실을 나갔다. 애리조나의 뒷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엔터프라이즈는 애리조나가 문을 닫는 소리에 무언가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문이 계속 열려 있었지만, 싸이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리펄스가 뛰어간 때를 생각하면, 싸이렌 소리가 이미 온 기지를 메우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각이었는데도 말이다. 


엔터프라이즈는 POW 쪽을 보았다. 그녀는 아까 엔터프라이즈가 그랬던 것처럼 쇼카쿠 손에 들린 폭격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POW 또한 사쿠라 엠파이어 폭격기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웨일즈, 뭔가 잘못-」


 

엔터프라이즈는 웨일즈에게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리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조용히 모습을 지켜보기만하던 쇼카쿠가 엔터프라이즈의 말을 차단하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했다.



쇼카쿠 「지휘관 대리라니요?」


POW 「우리 진수부에는 지휘관이 부재일 경우 내가 대리를 맡아 지휘를 하게 되어 있다. 지금 지휘관이 부재중이니 그 권한을 쓴 것뿐이다」


쇼카쿠 「아니, 그게 아니라…」


POW「…그럼 뭐지?」


쇼카쿠 「오늘 지휘관 대리는 저인데요?」



손가락으로 자신이 쓰고 있는 모자를 가리키며 방긋 웃는 쇼카쿠. 그러자 POW가 경악스럽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POW 「말도 안 되는 소리! 지휘관이 얼마 전까지 적국의 군함이었던 너한테 대리를 맡겼다고!? 지휘관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엔터프라이즈조차 아직 맡아보지 못한 직위를 네가!?」



목소리를 높이던 POW는 쇼카쿠가 쓰고 있던 지휘관 모자를 보고 한 번 흠칫거리더니 쇼카쿠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POW「그 모자! 네가 어떻게 그 모자를 가지고 있는 거지!? 네가 지휘관한테 위해를 가하고 강탈한 거지!!」



분노한 POW가 검을 쇼카쿠한테 겨눈다. 날카롭게 빛나는 검끝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었지만, 쇼카쿠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쇼카쿠 「우후훗. 재밌는 농담을 하시네요, 프린스 오브 웨일즈씨. 지휘관님은 오늘 감기에 걸리셔서 방에 누워계시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지휘관님의 부탁을 받아서 그런 것일뿐」


쇼카쿠 「그러니 오늘은 절 지휘관님이라 생각해주시고 대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예를 들면…프린스 오브 웨일즈씨가 지휘관님한테 제출하려고 했던 그 문서 같은 거 말이에요」



쇼카쿠가 한 말에 POW가 든 검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POW는 곧 콧방귀를 뀌며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POW 「이건 네놈 같은 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걸 볼 수 있는 건 오직 지휘관뿐」



그렇게 말하며 검을 걷어 들이고 돌아서는 POW.



POW 「지휘관이 있는 방으로 가서 직접 전하겠다. 난 이만 자리를 뜨지」



그 말을 남기고 집무실을 나가려고 하던 POW의 등을 향해 쇼카쿠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쇼카쿠 「아~, 아~. 과연 지휘관님을 만날 수 있으려나~. 아카기 선배랑 카가 선배가 지금 지휘관님을 지키고 있는데다가, 지휘관님이 방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그리고 지휘관님이 만약 사람들이 제 말을 안 들으면-」



쇼카쿠가 들고 있던 폭격기를 종이비행기 날리듯 앞으로 날린다. 



쇼카쿠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쇼카쿠의 팔에서 날아오른 폭격기가 곧바로 POW에게 향한다. 폭격기가 장착하고 있던 폭탄을 POW에게 투하하려는 찰나, POW가 다시 돌아서며 그 폭격기를 깨끗하게 베어버렸다. 



POW 「나에게 이런 잔꾀가 통할 거라 생각하나」


쇼카쿠 「어머어머~. 성격도 급하셔라. 아직 공연은 끝나지 않았답니다~」



쇼카쿠가 모자를 들어 머리 위에서 한 바퀴 돌린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수많은 함재기들이 구멍과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난입하기 시작했다. 제공기나 뇌격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순수한 폭격기 편대들이었다.



쇼카쿠 「사랑스러운 즈이카쿠의 함재기들~」



POW와 엔터프라이즈는 일단 서로 등을 맞대고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의장이 없는 이상 자신들이 함재기를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POW「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야. 싸이렌은 또 어떻게 됐고. 올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POW는 이제서야 이변을 눈치챈 듯 오지 않는 증원을 향해 투덜거렸다.  



쇼카쿠 「후훗. 혹시 동료분들을 기다리시나요? 그렇다면 유감. 도크로 가는 길은 콩고급 분들이, 지휘통제실은 타카오급 분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증원은 결코 오지 않을 거랍니다」


POW「뭐라!?」


쇼카쿠 「진수부의 핵심 부분을 장악하는 것은 지휘관 대리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요?」



쇼카쿠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쇼카쿠는 아무 의미없이 하는 행동이었지만 POW한테 있어 그 모습은 도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쇼카쿠 「이제 다들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인지 아셨을 거라 생각해요」


 

쇼카쿠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POW 앞으로 가서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쇼카쿠 「지휘관 대리 쇼카쿠가 지휘관님 대신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 명령합니다. 어서 그 서류를 저한테 넘겨주세요」



POW가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쇼카쿠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를 낚아챘다. 그리고 서류를 찬찬히 읽어가던 POW는 얼마 안 있어 숨을 삼켰다.



POW 「지휘관 대리인 쇼카쿠의 명령을 어길 경우…직위 해제 및 그 사태가 위중할 경우…해체?」



해체라는 빨간 글씨와 함께 자신도 자주 쓴 적이 있는 지휘관의 도장이 커다랗게 찍혀있었다. POW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그 지휘관이 이곳에 와서 '해체' 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POW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엔터프라이즈가 쇼카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쇼카쿠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POW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쇼카쿠 그녀가 허리에 차고 있는 카타나를 연상시킬 정도로 날카로웠다. 






쇼카쿠는 POW가 내민 서류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아들였다. POW는 끝까지 주기 싫은 표정이었지만 지휘관의 도장이 찍힌 그 명령서를 보고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쇼카쿠 「흠흠흠. 그럼 한 번 볼까요~」



쇼카쿠가 서류를 찬찬히 읽어간다. 침묵이 흐르는 집무실 안. 그 와중에 엔터프라이즈는 쇼카쿠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이는 표정. 하지만 엔터프라이즈에게는 서류를 읽을수록 쇼카쿠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쇼카쿠 「이것 참 과격하시네요. 요약하자면 모든 사쿠라 엠파이어 소속 군함의 추방 또는 해체.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지금 시행되고 있는 사쿠라 엠파이어 군함들의 대공 능력 개량과 레이더, 그리고 함재기의 개량을 중지. 그녀들이 또 다시 배신했을 경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상실할 위험이 있음. 맞나요?」


POW 「그렇다. 2차 대전쟁 때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선전포고도 없이 비겁하게 기습을 했으며, 이번 전쟁에서도 공동의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한테 이빨을 내밀었던 너희들이다.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쇼카쿠 「흠…혹시 다시는 배신하지 않을 것이니 저희들을 믿어달라고 하면 믿어주실 건가요?」


POW 「…장난하나?」


쇼카쿠 「그렇지요~, 그렇지요~」



쇼카쿠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방 안의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쇼카쿠 「프린스 오브 웨일즈씨. 음,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 불편하니 엔터프라이즈씨가 하는 것처럼 웨일즈씨라 부를게요. 웨일즈씨, 질문 한 가지만 할게요. 지휘관님이 오늘 왜 당신이 아닌 저를 지휘관 대리로 명했다 생각하세요? 그리고 왜 지금 몸져누운 지휘관님을 이곳 진수부 인원이 아닌 아카기 선배랑 카가 선배가 지키고 있을까요? 어라? 이러면 두 가지인가?」


POW 「……모른다. 너희들이 협박을 해서 강제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면 지휘관이 생각이 있어 했을 터…」


쇼카쿠 「맞아요. 참고로 저희들은 지휘관님을 협박한 적이 없는데다, 협박한다고 넘어갈 지휘관님도 아니니 전자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네요. 그렇다면 후자만이 남는데 지휘관님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믿을 수 없는’ 사쿠라 엠파이어 소속원들한테 대리나 경호 같은 중요한 일을 맡기셨을까요?」 


POW 「……모른다」


쇼카쿠 「아니요~. 웨일즈씨는 이미 알고 계세요. 웨일즈씨 같이 실력자인데다 지휘관님을 옆에서 오랫동안 모셔온 사람이 모를 리가 없어요」 


쇼카쿠 「지휘관님은 지금 모든 분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거예요. 봐라, 아파서 무방비인 나를 아카기와 카가가 지키고 있다. 무방비라 언제든 내 목숨을 거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지켜주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또 다시 배신을 할까? 하고 말이에요」


쇼카쿠 「저도 마찬가지에요. 지휘관 대리로서 단말기 비밀번호를 얻었는데 그 단말기에 접속해보니 기밀이 가득하더군요」


POW 「……」


 

쇼카쿠가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든다. 그러자 방안을 맴돌던 함재기들이 일제히 창문과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함재기를 내보낸 쇼카쿠는 뒤돌아서 구멍을 통해 멀리 보이는 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거대한 본체인 정규항모 쇼카쿠급 1번함 쇼카쿠가 도크에서 개수를 받고 있었다. 모든 대공포와 전탐을 제거하고 다시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쇼카쿠 「그런 지휘관님의 마음을…당신들은 모르시겠나요? 웨일즈씨?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씨」



방 안에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오랫동안 이어지던 그 어색한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엔터프라이즈였다.



엔터프라이즈 「…나는 지휘관의 의견에 찬성한다. 지금 같이 전력이 부족할 때는 구축함 하나도 아까운 법. 지휘관이 너희들을 믿고, 너희들 또한 신뢰를 바탕으로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다고 한다면 나는 아무런 불만도 없어. 하지만…」



엔터프라이즈가 POW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엔터프라이즈와 시선이 마주친 POW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POW 「신용 자체가 없는 이들을 믿으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지금 지휘관을 해치지 않는 것도, 또한 기밀을 유출하지 않는 것도 우리를 방심시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계략일지도 모르는 일」


POW 「지휘관 또한 인간이야. 인간은 실수를 하는 법. 난 이번 일은 지휘관이 실수를 했다 생각해」


POW 「…난 이만 가보지. 이 이야기는 나중에 지휘관이랑 직접 하겠어」



POW는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려 방을 나갔다. 이번에는 쇼카쿠도 POW를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 「저대로 그냥 보내도 괜찮은 것인가?」


쇼카쿠 「우후훗. 애초에 저 고지식한 사람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바로 넘어올 거라 생각지 않았답니다. 바로 넘어왔으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다시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웃는 쇼카쿠. 




쇼카쿠 「엔터프라이즈씨도 이만 가보도록 하세요. 아, 애리조나씨는 굳이 이곳에 다시 오라고 하실 필요 없답니다. 제 동생인 즈이카쿠가 업무를 도와줄 테니까요」



쇼카쿠의 시선을 따라가자 어느새 와 있었는지 즈이카쿠가 방 앞에 서 있었다. 엔터프라이즈는 마주칠 때마다 싸움을 걸어오는 즈이카쿠가 조금 꺼림칙했으나,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방 앞에 조용히 있을 뿐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 「…그럼 나도 이만 가보도록 하지. 지휘관의 대리로서 업무는 똑바로 수행해주길」


쇼카쿠 「걱정하실 필요 없답니다~」



손을 흔드는 쇼카쿠를 뒤로 하며 엔터프라이즈는 방을 나섰다. 즈이카쿠를 지나칠 때도 즈이카쿠는 엔터프라이즈에게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일단 가서 좀 쉬자.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엔터프라이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 해안



「그래서 결과는?」


벨파스트 「웨일즈씨의 설득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엔터프라이즈씨는 그나마 납득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웨일즈씨의 설득에 실패함으로서 강경파의 견제는 계속 될 거라네요」


「절반의 성공인가. 뭐, 엔터프라이즈라도 납득해준 게 다행인가」


벨파스트 「그 사람은 옛날부터 주인님의 속을 잘 헤아렸으니까요」


「…질투?」


벨파스트 「솔직히 말해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주인님의 속내를 헤아리는 것은 메이드한테 있어서도 필수적인 스킬이니까요」


…벨파스트가 있어 든든해」


벨파스트 「감사합니다. 더욱더 정진하겠습니다」


벨파스트 「그건 그렇고…주인님은 그녀들이 이곳에 녹아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과연 그녀들이 배신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지요?」


「몰라」


벨파스트 「네?」


「그녀들이 이곳에 녹아들 수 있을지는 그녀들 자신한테 달렸어. 그녀들이 우리 진수부 구성원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진수부 아이들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말지 결정하겠지」


「그리고 배신에 대한 건…우리, 아니 최소 나랑 벨파스트가 믿어준다면 그녀들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까?」


벨파스트 「…계획을 좋아하시는 주인님이 이번에는 굉장히 무계획적이군요」


「내가 계획을 좋아하지만 운을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


벨파스트 「하아…」


「뭐야뭐야. 그렇게 한숨만 쉬다가는 행운이 다 빠져나갈걸」


벨파스트 「이게 누구 때문이라 생각하시나요?」방긋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아, 오늘은 쇼카쿠한테 전부 맡겨놨으니 오랜만에 낚시나 하러 가볼까」


벨파스트 「…주인님」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 그러다 주름 생긴다?」


벨파스트 「주인님!」


「가자, 벨파스트. 오랜만에 너를 타고 나갈까 싶은데. 따라와 줄 거지?」


벨파스트 「로열 네이비의 최대 순양함을 낚싯배로 쓰시는 분은 아마 주인님 뿐일 겁니다…하지만 이 벨파스트, 기꺼이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고마워」


벨파스트 「준비가 끝나는대로 신호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벨파스트가 우아하게 인사를 하고는 해안을 떠났다. 지휘관 밖에 남지 않은 해안. 파도 치는 소리만이 들리는 바다를 바라보면 지휘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말 바보들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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