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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마스

시즈카가 러브레터를 받은 것 같다

by 기동포격 2019. 10. 4.

여름을 맞아 시작되었던 대형휴가도 세상에서는 끝을 맞이 하고, 여름의 더위도 잦아들기 시작한 요즘.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한 달에 걸친 장기휴가가 끝나고, 학업과 아이돌 활동의 양립이 다시 한 번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욱 기합을 넣어서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던 참에 사건은 일어났다.



「러브레터를 받았다?」


「네. 학교에 갔더니 이게」


「…굉장한데. 진짜인걸」



직사각형 핑크색 봉투에 벚꽃 잎을 본뜬 스티커를 붙여 봉하고는 커다랗게『모가미 시즈카님에게』라고 쓰여진 편지.



「벌써 열어봤어?」


「아직 안 열어봤어요. 뭔가, 열고 싶지 않아서」


「그래?」


「네……거기다, 그게」


「응?」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질투를 조금 해줄까……그런 생각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 반응을 보건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직 노력이 부족하다……아니, 친애도가 부족하다고 하면 될까.


…뭐, 어쨌든.

프로듀서가 내가 원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건 확실했다. 



「시즈카, 기분 나빠?」


「아니요」


「아니, 하지만」


「안 나쁘다고 하잖아요」


「그, 그래…? 미안」


「앗…아니요, 저야말로」



무심코 말투가 거칠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어른인 척을 해도 난 이 사람 앞에서는……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리해도 어린애 같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시즈카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고 싶냐니……무슨 의미인가요?」


「이 러브레터를 준 아이랑 사귈 거야?」


「…아직 아무 결정도 안 했어요」


「어쩌면, 사귈지도 모르는 거야?」


「…몰라요」



거짓말. 사실 대답은 이미 나왔으면서.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따로 존재한다.

그래도 애매하게 대답하는 것은……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 정도는 질투를 해줬으면 하니까.



「…흐~음」


「프로듀서가 왜 고민하는 거죠?」


「시즈카가 이 아이랑 사귀게 된다면, 앞으로 있을 예정에 수정을 가해야 하니까」


「…아직 아무것도 안 정했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니까 고민하는 거야. 결과가 어떻게 되던, 되도록 빨리 결정하는 것보다 좋은 건 없지」


「프로듀서는 제가 고백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시나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난 박수를 치며 응원해줄 뿐」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어주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질투는 커녕, 싫은 표정 1mm도 보여주지 않고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 


모범적인 어른, 올바른 행동.

책망할 부분은 없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정도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반대하지 않는군요」


「남의 연애를 방해하는 녀석은 천벌을 받는다고 하잖아」


「…그런가요」


「거기다 나랑은 인연이 없던 청춘이라는 녀석이니까. 그 때가 오면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응원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응원해줄게」



조금만, 조금만 질투를 해주셔도 되잖아요.

당신의 아이돌이라고요. 당신이 지금까지 키운 아이돌이란 말이에요.

그런 아이돌이, 당신을 좋아하는 아이돌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도『응원』한다니.



「프로듀서는 바보, 내 마음도 모르고!」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시, 시즈카…?」



이제, 정말로.

정말로 제멋대로여서.

나 자신이 싫어진다.

좋아하는 사람이 날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나의 본심은 완벽한 방자함이며, 오만이며, 우쭐함.



「…오늘은 돌아가겠습니다. 연락은 메일로 주세요」



시선을 떨어뜨리고 주먹을 쥐고는 천천히 뒤돌아선다. 주먹이 하얗게 변하도록 짐을 쥐고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벗어나기로 한다. 



「잠깐만…시즈카, 기다려 보라니까」


「놔주세요」



당신한테는 잘못이 없다. 올바르다. 

내 잘못이다. 내가 틀렸다.

그래도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만다.

어쩔 수 없는, 어린애라는 증거.



「이거 놔요!」


「앗, 얌마. 날뛰지 마」


「고함지를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잠시 이야기를」


「이 바보…!」



프로듀서한테 잡힌 손을 뿌려치기 위해 있는 힘껏 손을 흔든다. 옆에 있던 선반에 손을 부딪쳐 둔통이 신경을 타고 올라온다. 

무심코 프로듀서를 노려본다.



「…큭. 시즈카!」


「꺅!」



그러자 프로듀서는 갑자기 보복이라도 하듯 나를 밀쳤고,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등에서 둔통이 느껴졌고 나는 눈을 무심코 감고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울려 퍼지는, 뭔가가 깨지는 소리. 

하지만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이라는 듯 얼굴에 떨어지는 미지근한 물방울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손으로 닦고 조심조심 눈을 뜬다. 



「…피?」



그것은 빨갛고 아름다운 액체.

아직도 내 얼굴에 뚝뚝 떨어지는 그것의 근원을 눈으로 쫓는다.



「시즈카…안 다쳤어?」

「프로, 듀서……?」



그것은 나를 쓰러뜨리며 쓰러진 프로듀서의 머리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피였다.

시야 끝에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큭, 무슨 짓을 하시는 건가요!」


「…선반 위에서 꽃병이 떨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조금 위험했거든」


「어쨌든 바로 치료를 해야 해요…비켜주세요」


「소란 떨지 마. 이런 건 놔두면 조금 있다 멈춰」



프로듀서는 힘없이 웃으며 내 위에서 천천히 벗어난다. 

나는 당황하면서도 사무소 구급상자를 가져와 거즈랑 붕대, 소독약을 꺼내 될 수 있는 한 지혈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신 건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돌을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프로듀서가 다쳐도 괜찮은 이유가 되지 않아요」


「시즈카가 다치는 것보다 100배는 나아」



다행히 상처가 그렇게 깊지 않았던지 상처의 크기에 비해 피 자체는 바로 멈췄다. 

거즈를 대어 붕대를 감은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행동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약속은 못하겠는데」


「못하더라도 해주세요. 프로듀서가 저를 생각하듯 저도……저희들도 프로듀서가 소중해요」


「가슴에 새겨둘게」



프로듀서는 완벽히 이해했는지 미안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드디어 냉정해진 나의 정신이 나를 천천히 몰아세우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마음대로 화를 내면서 마음대로 이곳에서 벗어나려 했고, 그러면서 프로듀서의 손을 뿌리치려 했기에 이 사람을 상처 입힌 것이다. 


내 멋대로 실컷 화낸 결과, 좋아하는 사람을 상처 입히고……난 최악의 인간이라고.



「시즈카」


「…뭐, 뭔가요?」



이름을 불려 무심코 몸이 긴장을 한다. 

방금 일어났던 일은 역시 혼나도 어쩔 수 없다.



「미안」


「…네?」


「너무 무책임한 대답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아요. 프로듀서는 틀리지 않았어요」


「그렇다 할지라도 말이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전부 잘못한 거예요」



이 기회에 전부 이야기 해버리자. 

내 마음도, 이 감정도 전부, 전부. 

결과는 뻔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나를 감싸줬다. 


적어도, 그것에 대한 인사 정도는.



「사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무슨 의미?」


「저,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있어요」


「그, 그랬구나」


「정확히는……있었다고 말하는 게 올바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 그건 그게……참 안 됐네」



고개를 숙이고 묻지 말걸……그런 표정을 짓는 프로듀서. 

그 감정은 나를 향한 동정인가, 아니면……나의 마음을 깨닫고 받아들여주는 걸까.

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 마당까지 와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이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그렇게 생각한다. 



「당신을 좋아해요, 프로듀서」



이런 때에, 이런 때이기에 말한 마음.



「…진짜?」


「진짜에요. 증거를 보여드릴까요?」


「아니…증거 같은 건」


「그럼 제 마음대로 할게요?」



살짝 다가가 양손으로 프로듀서의 얼굴을 잡는다. 

상처를 자극하지 않도록 상냥하게 잡고 얼굴을 접근시킨다. 



「시즈……으음!?」


「음…어땠나요?」


「어땠냐니……아얏!」


「가만히 있어주세요. 상처가 벌려져요」


「얌마…너」


「말했죠? 좋아하는 사람은『있었어요』」



첫키스는 피맛이 났다.

분명 머리에 꽃병이 떨어진 충격으로 찢어진 거겠지. 

머리 쪽이 심각해서 프로듀서는 모르겠지만.



「…좋아했어요, 프로듀서」



뺨에 뜨거운 감촉이 흐르고 시야가 흐려진다. 

웃음 따윈 전혀 나오지 않았고, 울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데도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른다. 


이것이, 실연. 가슴이 부풀어 터질듯이 아프다. 

도저히 끝까지 웃고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가슴에 뛰어들어 안고 싶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가깝고도 먼, 비어버리게 된 당신과의 거리.



「울고 싶은 건 나거든」


「죄송……해요」


「…참나. 자, 이쪽으로 좀 더 와」


「그렇게는, 못해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몸이 살짝 감싸이는 감각.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말했잖아. 개인적으로는 응원한다고」


「…뭔가요, 그게」


「계속 좋아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시즈카 네 자유야」


「……참, 너무한 사람이네요」


「시꺼」


「포기하라고 하면 될 텐데」


「하라고 하면 포기할 거야?」


「…아니요」


「그럼 말 안 할게. 여기서 더 울려서 양복이 더러워져도 곤란하니」


「참 솔직하시네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일 좋은 거거든」



잘못을 했다는 자각은 있다.

이 마음이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당신의 상냥함에 응석부려 입술을 빼앗은 것은……반성하지 않기로 한다.



「프로듀서」


「왜?」


「음…여기요」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이번에는 프로듀서가 해주세요, 같은.



「…시즈카」



프로듀서의 손이 내 뺨을 살며시 감싼다. 

상냥하게 들어올리고는 숨결이 점점 가까워진다.



「아얏」



그리고 딱밤.



「바~보. 6년은 일러」



눈을 뜨니 그곳에는 평소처럼 깔깔 웃는 프로듀서의 얼굴이 있었다.



「자,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잠깐만요.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글쎄다~. 요즘 쌀쌀해지기 시작했으니, 오랜만에 타누키 우동이라도 먹을까」


「어물쩍 넘기려 하지 마세요, 프로듀서!」



6년. 똑똑히 들었어요.

저는 그 때까지 쭉 당신을 좋아할 거예요.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주세요.

그 때까지 그 여유로운 태도를 반드시 무너뜨려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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