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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니마스

허당 왕자님

by 기동포격 2020. 7. 27.

「안녕하세요」



밉살스럽고, 건방지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행하는, 특히 마음이 담겨 있지도 않은 인사. 그런 인사에 그는 항상 조그맣게 미소 지으며『안녕』이라고 해준다…그럴 터였는데.



「하아…」



사무소 공동공간에 놓여있는 소파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는 그의 등. 이 광경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대로 자면 주름이 질 텐데.



「당신 집이 아니거든요?」



그의 등을 향해 손을 뻗다가, 책상에 굴러다니는 빈 커피캔과 펼쳐진 채 방치되어 있는 노트북에 시선이 멈췄다. 



「…글러먹은 사람」



뻗고 있던 손을 거둬들이고 모포를 든다. 아이돌을 도와야 할 프로듀서가 감기 때문에 아이돌의 발목을 붙잡는 모습 같은 건 차마 볼 수 없다. 남의 몸 상태를 신경 쓰기 전에 자신의 몸 상태를 신경 써줬으면 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 그 자체.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일하는 그에게 너무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분명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노트북도 충전시켜 놔야지」



절전모드가 활성화 되어 어두워진 노트북 화면에는, 기획서 원안이라는 문자가 박혀 있었다. 화장품 회사의 이름과 히구치 마도카라고 쓰인 항목을 빼고는 말 그대로 새하얗기 그지없다. 모처럼 따온 기획인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정말, 글러먹은 사람」




◇◇◇




「덕분에 살았어, 마도카」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곤란한 듯 웃는다. 



「오늘 일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거든. 정신을 차렸더니 아침이더라고」



거짓말. 오늘 준비만 그런 게 아닌 주제에. 그렇게 태연한 체 하면서 강한 척 하는 점이 싫다.



「조금 더 똑바로 해주시지 않을래요? 몸 상태가 나빠지면 제가 곤란하거든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


「딱히 당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좌석에 몸을 푹 묻고 눈을 감는다. 나는 그의 눈에 대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마도카도 몸조심 해. 요즘 일도 늘어나고 있으니, 오프를 원할 때는 언제든 말해줘」



백미러 너머로 눈이 마주친다.



「가능한 요구에 응해줄 테니」



그렇게 덧붙이고 또 웃는다. 거북해져서 백미러에서 시선을 거두고 창문으로 향한다. 빨간불이 된 신호등을 앞에 두고 차가 느릿하게 멈추고, 차 안에는 침묵이 맴돈다. 



「당신은…당신은 어떤가요?」



짓궂은 질문. 그가 바쁘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 



「나 말이야? 나도 너 정도는 아니지만 바쁘려나. 바쁘지만 기뻐. 마도카를 아이돌로 데뷔시킨 게 옳았다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는 게. 마도카가 즐거운 듯 일을 하는 게, 무엇보다도 기뻐」


「…그런가요」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만족스러운 듯 차를 천천히 몰았다. 평소 같이 독설을 내뱉지 못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는 엔진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나는 그가 싫다. 그 순진한 상냥함이,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그 마음이, 그 미소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수 없는 내가 정말로 싫다.



◇◇◇



「수고」


「감사합니다」



내 쪽으로 내민 생수를 받아 목을 축인다. 



「오늘 촬영, 어땠어?」


「뭐…평소대로였지만요」


「그래? 얼굴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는데」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남자다. 



「기분 탓이겠죠」



평정을 가장하며 병뚜껑을 닫는다. 축였을 목이 말라간다. 나는 이렇게나 얼굴에 드러나기 쉬운 타입이었던 걸까. 



「사무적이라고는 해도 너랑은 오랫동안 같이 지내왔으니, 나 나름대로 너를 이해하고 있어. 고민이 있다면 상담이든 뭐든 해줘」



캔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내 앞을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그가 출발하고 조금 늦게 나도 걷기 시작했다. 그를 앞에 두고 걸어보니, 그의 키가 얼마나 큰지 느껴진다. 발돋움하면 닿을 것 같지만, 분명 닿지 않을 것이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처럼.



「돌아갈 때는 조수석에 앉아주지 않을래?」


「하아? 어째서」


「아까 이벤트에서 쓸 의상을 받아왔거든. 사이즈 확인, 착용감 등 확인할 게 이것저것 있어서」



뒷좌석에는 의상이 들어있는 봉투. 암막으로 숨겨져 있기는 하지만, 휘황찬란한 의상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 느껴진다. 제 세상인 양 자리 잡고 있지만, 거긴 내 자리니까.



「최악」


「미안, 정말로」



손을 합장하며 미안하다는 포즈. 일부러 그러는 듯한 동작이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딱히. 참으면 될 일이고」


「그렇게 해주면 고맙고」



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해가 기울어 쏟아져 들어오는 석양이 눈부시다.



「오늘은 금요일이니…분명 댄스를 하는 날이지」


「오늘은 레슨이 없다고 들었는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자율 연습, 하잖아?」



분명 자율 연습을 하고 있지만, 그걸 직접 이야기 한 적은 없을 터. 게다가 어떤 연습을 하고 있는지 조차 파악하고 있을 줄은.



「말했잖아. 나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멋대로 이해하고 있다 생각하지 말아주실래요. 완전 불쾌하거든요」



빨간색이 된 신호등이 눈동자를 바싹바싹 태운다.



「내 마음은 하나도 모르면서」



툭 튀어나온 말은 침묵에 녹아들었다. 시야가 부예져서 앞차의 번호판조차 읽을 수 없어진다. 



「그렇네. 나는 네 마음을 몰라」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모르니까 전해줬으면 해. 나는 좀 더 알고 싶어. 너에 대해서」



느끼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대사. 이런 대사를 너무나 진지하게 입에 담으니 질이 나쁘다. 나는 허당 왕자님 따위한테 구제받는 공주님이 아니다. 



「눈, 감아」


「어?」


「됐으니까」



눈을 감은 그의 옆얼굴은, 평소에 보여주는 얼빠진 얼굴보다 약간 늠름하게 보였다. 조금 붉어진 뺨은 석양 탓일까. 

이런 작은 반항심도, 깜빡이가 껐다 켜지는 리듬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도, 전부, 전부 당신 탓. 


그의 양뺨을 양손으로 잡아 힘차게 끌어당긴다. 그 기세 그대로 입술을 겹친다. 입 안에 퍼지는 커피의 쓴맛과 신맛. 나의 첫 키스는 레몬맛이 아닌 것 같다.



「어? 아니. 마, 마도카」


「파란불이에요. 뒤에도 차 서 있거든요」


「아, 알겠어」



운전이 왠지 서투르다. 속도도 평소보다 빠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게…마도카, 방금 그거…」


「여기 좌회전이에요」


「앗차」



크게 당황하며 핸들을 꺾는 모습에 무심코 키득거린다. 내비게이션과 눈싸움을 하는 게 그렇게 즐거운 걸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마」


「정말, 글러먹은 사람」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웃는다. 이런 시간이 즐겁다, 라고 생각하는 나도 참 나다. 



정말 글러먹었으며 미덥지 못한 사람인데.





있잖아, 어째서?





난 어째서,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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