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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아이마스

1. 갑작스러운 등장

by 기동포격 2020. 7. 4.

‘프로듀서씨가 이상해’



점심시간에 시호는 그렇게 말했다. 

시선을 잡지에서 프로듀서 쪽으로 돌린다. 모니터 너머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이돌이 있는 실내에서 흡연을 할 리는 없고 아마 전자담배일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보여주는 프로듀서의 습관. 확실히 요즘 들어 저렇게 담배를 피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는 아무리 전자담배라고 해도 교육상 좋지 않다며 자제하던 프로듀서였는데 말이다.


아, 시호가 프로듀서에게 다가간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걸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곧 연기가 끊기고 시호의 폭풍우 같은 잔소리가 프로듀서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똑바로 들어주세요!」



아무래도 프로듀서가 또 듣는 둥 마는 둥 하는가 보다. 평소였다면 미안하다면서 실실 웃으며 넘어갈 프로듀서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미안, 시호. 다음에 이야기하자」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문을 열 때 주머니를 만지면서 무언가 찾는 것을 보니 옥상에 담배를 피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프로듀서가 떠나고 멍하게 문을 쳐다보던 시호는 곧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짧게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지?」



점심시간에는 의문을 표했던 나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무언가 이상했다. 나와 시호는 잠시 동안 프로듀서가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 투, 쓰리, 포!」



트레이너의 구령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이미 몇 번을 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한 춤. 하지만 멤버들은 여전히 성실히, 진지하게 연습에 임하고 있었다. 실전 무대에 올라가면 실수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으니까. 그것이 프로니까.



「고생했다」



연습이 끝나고 숨을 고르고 있으니 프로듀서가 봉투를 들고 다가왔다. 



「라이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열심히 하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 그러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지금까지 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니까」



프로듀서가 봉투를 내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받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멤버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음료가 5병 들어있었다. 나는 감탄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왜 아까는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걸까? 



「시즈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도 괜찮아. 근육을 잘 풀어주고 휴식을 취하도록. 시즈카는 오늘 인터뷰가 있는 거 알지?」


「네」


「그래. 유닛을 대표해 하는 인터뷰니 꼼꼼히 준비했을 거라 믿는다」


「프로듀서가 예상 질문도 주셨잖아요.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래」



한순간 프로듀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바로 정면에 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준비가 끝나면 바로 사무소로 오도록 해」



그 말을 끝으로 프로듀서는 몸을 돌려 레슨장을 빠져나갔다.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 방금 그 표정 봤지?」



시호가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시호,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프로듀서를 신경 쓰게 된 거야? 옛날이었으면 프로듀서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어도 신경 안 쓰고 돌아갔을 너잖아」


「무, 무슨…」



시호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는다. 보기 힘든 귀중한 장면 겟.



「…하아…」



하지만 곧 안정을 되찾은 듯 손을 이마로 가져가며 한숨을 쉰다.



「사람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이 말하기는」


「아니, 그랬었잖아?」


「큭」



시호의 살기어린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장난은 여기까지. 이 선을 넘어버리면 시호는 정말로 화를 낼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신경 쓰는 건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냐. 다만 혼자서 무리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내 아이돌 활동에 큰 지장을 주니까 신경 쓰는 것일 뿐. 그래, 그것뿐이야」


「흐응~?」

  

「그 다 안다는 듯한 시선 치우지? 기분 나쁘거든?」 


「하아…됐어. 이 이야기는 끝. 그것보다 이번 인터뷰에 너 혼자 보내야 해서 아쉽네」


「뭐야, 믿음직하지 못해서?」


「하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공적인 업무에서만큼은 난 널 신뢰해, 시즈카. 너라면 아마 실수 없이 무난하게 성공시키고 오겠지」



갑자기 튀어 나온 칭찬에 얼굴이 붉어진다. 여전히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여자이다. 



「아쉽다는 건 프로듀서씨를 좀 더 옆에서 관찰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아쉽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시즈카, 부탁이 있는데」


「응?」


「프로듀서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나한테 말해줘.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이상하다. 이 정도면 이미 신경 쓴다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시호가 점점 치하야씨나 코토하씨같이 바뀌어가는 느낌이다.



「아, 알겠어. 그런데 시호,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겠는데…」


「뭔데?」


「너, 내가 알고 있는 시호가 맞지?」


「하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까지 이상해진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랬습니다. 저의 섣부른 걱정이었습니다.


시호의 걱정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아니, 이 모습을 보아할 때 오히려 시호의 걱정은 양호한 수준이 아닐까?



「프, 프로듀서?」


「왜?」


「뭐, 뭔가요? 그 차림은?」



인터뷰 장소에 가기 위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괴상한 차림을 한 프로듀서가 다가왔다. 검은색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보는 사람까지 더위를 느낄 정도로 얼굴을 꽁꽁 싸맨 프로듀서. 나도 넥타이와 넥타이핀을 보고서야 프로듀서인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신경 쓰지 마. 오늘은 왠지 이러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자, 그러지 말고 빨리 차에 타. 이러다 늦겠다」


「…네」


「응? 시즈카, 왜 뒷자리에?」



이렇게 이동할 때면 항상 조수석에 앉았지만 오늘은 예외다. 



「아…오늘은 왠지 이러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래…그러고 싶은 기분이면 어쩔 수 없지」



프로듀서가 인터뷰 장소를 향해 차를 출발시킨다. 나는 뒷자리에서 폰을 들고 신속하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시호에게 보고했다. 




「XXX사의 연예부 기자 하코다테 스즈야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765 프로덕션의 모가미 시즈카라고 합니다. 오늘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쁜 사람이었다. 옛날에 아이돌이나 모델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 될 정도로 예쁜 사람이었다. 기자를 하고 있다는 게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머,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앗, 죄송합니다. 너무 예쁜 분이라 잠시 멍하게 쳐다보았습니다」


「후훗. 현역 아이돌한테 외모 칭찬을 받다니, 영광이네요.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그렇게 훈훈하게 시작됐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아무런 막힘없이 진행됐다. 기자의 질문은 대부분 프로듀서가 건네준 예상 질문 안에서 나왔고 덕분에 나는 무난하게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이걸로 인터뷰를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충실한 인터뷰였어요. 기사는 기대하셔도 괜찮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네. 아…그런데 오늘은 혼자 오셨나요?」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기자의 의문은 당연했다. 보통 이런 인터뷰는 프로듀서 같이 관련 직원이 따라오는 법이다. 아이돌 대부분이 미성년자이기에, 미숙해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나 아이돌이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대처하기 위해서인데…



「사실 프로듀서가 따라오기는 했는데…」


「했는데?」


「지금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것 같습니다만…」



기자가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 시선 끝에는 아까 같이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를 쓰고 기침을 하고 있는 프로듀서의 모습이 있었다.



「아, 저 분이…」



기자가 쓴웃음을 짓는다. 이해한다. 저 꼴을 보면 누구나 쓴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알게 된 이상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법이니, 인사는 하고 가야겠네요」


「아, 네…」



아마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기자가 프로듀서에게 다가간다. 기자가 가까워질수록 프로듀서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나한테까지 느껴진다. 어째서?




「안녕하세요. XXX사의 연예부 기자 하코다테 스즈야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감기에 걸려서…콜록콜록」



이제는 거짓말까지?



「아니에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명함을 놔두고 와서…감기에 걸리니 정신이 없네요」


「후훗, 괜찮습니다. 아프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수상하다.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대체 무엇이 프로듀서를 저렇게까지 만드는 거지?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콜록콜록.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요」



프로듀서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기자가 프로듀서의 팔을 잡았다.



「…큭」


「어설픈 연기는 그만두시지? 지금 그렇게 해서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말한 기자는 재빠르게 프로듀서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겼다. 약간 거칠게 벗기는 바람에 모자까지 떨어진 건 덤. 완벽하게 드러난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고 기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랜만이야, P」




「하아…알고 있었던 거냐」



내 옆에 앉은 프로듀서가 한숨을 쉬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간다.



「설마 인터뷰를 하는데 주변 조사도 안 할 거라 생각했어?」


「보통은 그렇게 심각하게 안 해. 질문하는 기자나 대답하는 아이돌이나 적당한 말만 주고받는 게 룰이라고. 서로 듣기 좋은 말만 해주고 대충 홍보성 기사 하나만 써주면 끝나는 거야」


「미안. 성격상 그렇게는 못 하거든」


「…프로듀서?」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프로듀서를 쳐다보자 프로듀서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대학 시절 알던 아이야. 그 뿐. 깊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어머머, 차가워라」 



기자는 싱긋 웃으며 앞에 있는 오렌지에이드를 빨대로 저었다.



「찬 건 그쪽이면서 왜 그렇게 피하려고 하는 걸까. 좀 더 당당해봐. 날 찬 남자니까」


「…큭」



기자는 아까와 달리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프로듀서를 몰아붙였다. 기자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프로듀서의 멘탈이 깍여나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찼다니, 설마…



「그렇게 무심하게 굴지 마. 앞으로도 자주 볼게 될 거니까. 나, 765 프로덕션 전담을 맡게 됐거든」


「뭐!」



프로듀서가 일어선다. 그 여파에 테이블이 흔들린다. 프로듀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잘 부탁해, P. 아, 시간이 돼서 가봐야겠네」



능글능글 웃던 기자는 폰이 울리자 황급히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빨리 사라져」



그런 기자의 모습을 보고 프로듀서는 차가운 한마디만을 날릴 뿐.



「후훗, 나쁜 남자」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를 향해 걸어가던 기자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박수를 치며 뒤돌았다.



「그리고 변장을 하려면 마무리까지 잘 하도록 해. 그 넥타이핀, 내가 선물한 거잖아. 여전히 마무리가 허술하구나, P」


「…아」



망연히 고개를 떨구고 넥타이 핀을 바라보는 프로듀서. 한방 먹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나중에 봐~」



그렇게 프로듀서의 멘탈을 한순간에 깨버린 기자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기자가 떠나간 자리에는 멍하게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는 프로듀서와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만이 남겨져 있었다.



「프, 프로듀서?」


「…미안, 시즈카. 갑자기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아니, 그건 괜찮은데…괜찮으세요?」


「아아…응, 괜찮아」



요 며칠 동안 프로듀서의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와 변장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차버린 옛 연인과 만난다는 것은 분명 꺼림칙했을 것이다. 이 사람이 겉으로는 거칠게 행동해도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2년 동안 같이 지내온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 자리까지 온 게 대단할 정도였다.



「기자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으면, 코토리씨나 미사카씨에게 대리를 부탁해도 되지 않았나요?」


「나도 그럴까 생각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둘 다 이 시간에 스케줄이 있더라고. 그래서 사장님한테까지 부탁해봤는데 역시 거절당했어」



사장님한테까지…프로듀서는 그만큼 몰려 있었던 것이다.



「하아…어찌됐든 끝났으니 돌아가도록 하자. 그리고 시즈카」


「네?」


「이건 다른 아이들한테는 비밀로 해줘. 나의 사생활인데다, 기자가 내 지인이라는 걸 알면 좋지 않은 영향이 갈 수도 있을 테니까」


「네」



프로듀서가 말하지 않아도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나조차 가슴이 이렇게 두근대는데 프로듀서의 옛 연인이 등장했고, 그 연인이 765 프로덕션을 전담하게 되었다는 걸 사무소 사람들이 알게 된다?


아마 사무소는 폭발해 버릴 것이다. 나쁜 의미로.



부르르.

사무소에 돌아가기 위해 일어선 그 때, 프로듀서의 폰이 메시지가 왔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오렌지에이드 계산 부탁해~. 날 찬 값이야. 그럼 다음에 봐~’


「그 녀석!」



아무래도 765 프로덕션 러브 전선에 커다란 적이 나타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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