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아이마스

1-3. 위화감

by 기동포격 2020. 7. 13.

그곳은 안팎으로 전쟁터였다.  


무대 밖에서는 무대를 기다리는 팬들의 기다란 줄과 굿즈를 사기 위해 필사적인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햇살이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 뒤 또한 전쟁터였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스태프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프로듀서님, 여기는…」   


「이 조명은 어제 좀 더 왼쪽에 있지 않았나요? 시호가 이쪽을 보면서 노래할 건데, 각도가 이러면 눈이 부실 것 같으니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네, 좋아요. 조명 색깔은? 어제 색깔을 체크했을 때는 주문한대로 장미색이 맞았었다? 그래도 한 번 더 체크해 봅시다. 사소해 보여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한 번 켜 봐주세요. 네, 좋습니다. 딱 이 정도 색깔이에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라이브의 총책임자로서 신경 쓸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어제 분명히 이곳저곳을 체크했었는데, 오늘 다시 와보니 이곳저곳이 어긋나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시호, 이리로 와봐!」   


「네!」   



내가 부르는 소리에 무대에서 합을 맞추고 있던 시호가 땀방울을 날리며 뛰어온다.    



「그쪽에 서서…그래. 거기서 포즈를 취해봐. 좋아, 팔은 좀 더 올려서 얼굴을 가리는 게 좋겠네. 아니, 눈은 가리면 안 돼. 시선을 좀 더 날카롭게. 음, 아니야. 시호 생각해봐. 네가 기대하면서 기다리던 큰마들렌을 아카네가 먹어버린 거야. 그래, 그 표정. 그 표정을 잊지 말도록」 


「하하하하」  



옆에서 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호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딱히 불평은 하지 않았다. 더운데도 불구하고 뒤에서 묵묵히 고생하는 스태프. 그 스태프들에게 잠시 웃음을 준다는 것. 얼핏 놀림감이 된 것 같지만, 반대로 그 웃음이 자신의 가치를 올려준다는 걸 시호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시호는 어른스럽고 영악한 아이였다.    



「협조해줘서 고마워. 다시 무대로 가서 멤버들이랑 같이 맞춰보도록 해」    



시호가 인사를 하고 무대로 향한다. 시호가 도착하자 시즈카가 날 힐끗 쳐다보았다. 연습하고 있는데 왜 데려갔냐는 힐난이 담긴 눈.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다시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게 마지막 체크리스트입니다. 이것만 하면 무대 컨셉 쪽은 완벽하게 끝납니다」 



둥그런 안경을 쓴 스태프가 종이를 나에게 넘긴다. 피곤에 절어있는 눈, 땀 때문에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 스태프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몸으로 절절이 보여주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비틀거리며 떠나가는 스태프를 향해 진심을 담아 허리 숙여 인사한다. 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  



「후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서야 쉴 틈이 생겼다. 쌓인 상자에 주저앉는다. 와이셔츠는 이미 땀에 절어있었다. 수첩을 꺼내 일정을 살펴본다. 곧 마무리 작업이 끝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리허설에 들어갈 것이다. 물론 나는 쉴 틈이 없다. 숨만 잠깐 돌린 뒤 옷을 갈아입고 기자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고생하시네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스즈야가 서 있었다. 오늘은 정장 차림. 스즈야가 유일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파란색을 첨가하지 않는 옷 차림새였다.  



「스…하코다테씨, 어쩐 일로 여기에?」   



상자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악수를 청한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법이다.   



「어머, 765 프로덕션 전담 기자가 라이브를 보러 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기자 분들은 보통 무대 뒤까지는 잘 안 들어오십니다」   



기자들은 노련하다. 준비 중인 무대 뒤에 눈치 없이 들어오면 얼마나 눈총을 받는지, 그리고 무대 뒤가 그 눈총을 받을 만큼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찍어봤자 어차피 내보낼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 대중에게는 라이브의 화려한 앞모습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메이킹 영상을 통해 무대 뒤가 나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소속사가 할 일이지 기자가 할 일이 아니었다.    



「제가 성격이 좀 특이한 편이거든요. 그리고 이 라이브의 총책임자인 프로듀서님한테도 흥미가 있어서요」  


「저에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라이브 준비를 하는 프로듀서는 처음 봐서요. 괜찮으시다면 지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스즈야가 수첩과 녹음기를 들어 보이며 웃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폰을 꺼내어 시계를 보았다. 기자회견까지는 아직 40분의 여유시간이 남아있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시끄럽고 먼지도 많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실까요」   


「좋아요」   



조용한 곳을 찾아 스즈야와 이동한다. 무대 뒤가 어둡기에 스즈야가 넘어지지는 않을지 신경 쓰며 천천히 걷는다. 마음 같아서는 손이라도 잡고 안내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모습을 남이 보았다가는 큰 오해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5분 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비어있는 미팅실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스즈야는 바로 가방을 책상에 내던지고는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최~악」   


「뭐가?」   


「냉방기구가 없어서 푹푹 찌는데다 먼지는 많고, 사람들은 화나 있고, 소음은 귀를 멀게 할 것 같고, 어두컴컴하고. 잘도 저런데서 일하고 있구나」   


「매일매일 저렇게 일하라고 하면 나도 못하지. 그리고 하다보면 익숙해져」   


「아, 난 전혀 익숙해 질 것 같지 않아」   


「사회부에서도 굴러 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나?」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뭐가 다른 걸까?   



「하여튼 고생하네. 다른 기자들이 말리던 이유를 알겠어. 다들 시원한 대기실에 앉아서 커피나 마시고 있겠지. 부러워라~」  


「그럼 너도 거기 있지 그랬어」   


「…바~보」   



나를 잠깐 노려보던 스즈야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뭐, 나도 그렇게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다.   



「일부러 봐주러 온 거지? 고마워」   


「…흥」   



콧방귀를 한 번 낀 스즈야는 내 얼굴을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이렇게 고생하는 직업이었던가?」   


「아, 그건 우리 765 프로덕션이 좀 특별하달까」   



다른 회사였으면 프로듀서는 한 번 둘러보고 결제만 했으면 끝날 일이다. 라이브 쪽으로 부서가 있어 각 분야를 책임지고 전문적으로 처리한다. 나 같은 어중이가 나서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든든하다. 하지만 765 프로덕션은 아니었다. 직함만 프로듀서지 매니저가 할일을 비롯해 각종 잡무를 나는 떠맡고 있었다. 직원을 늘려줬으면 하지만 급격하게 확장한지 얼마 안 된 것도 있고, 사장이 아마추어다운 것이야말로 765 프로덕션의 매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기도 했다. 하여튼 결론은 직원 충당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정말 블랙회사네. 퍼뜨려버릴까?」   


「그런 건 사회부 가서 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내 직장을 없애려고 하지 마」   


「아하하」   



재밌다는 듯 웃는 스즈야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날 백수로 만들 생각인가?   



「걱정 마. 백수가 되면 내가 우리 회사로 데려가줄게. 너라면 부장님도 만족하실 것 같은데」   


「사양하지. 난 지금 직장에 만족하고 있으니까」   


「흐~응」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잠시 바라보던 스즈야는 곧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가방에서 병을 하나 꺼냈다.   



「뭔데?」   


「땀 냄새 제거용. 참고로 향이 좋아서 향수 대용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더라」   


「이걸 왜?」   


「쓰시라구요. 좀 있으면 기자들하고 만나야할 텐데 땀 냄새 풍기며 만나실 건가요?」   



어차피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만날 생각이지만…뭐, 상관없나.   



「고마워, 잘 쓸게」   


「알면 됐어」   



스즈야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을 시작해볼까」   



스즈야가 수첩과 녹음기를 꺼내 책상에 둔다.    



「아무것도 못 건지고 가면 부장님이 날 혼낼 테니까. 그러니 여기 온 보람이 있게 대박 정보 하나만 줘」   


「시간이 별로 없는데…」 


「조금 있다가 있을 기자회견 말하는 거지? 나도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 질문을 다시 한 번 봐야하거든. 짧게, 그리고 임팩트 있는 걸로…OK?」 


「……사실 이건 기업비밀인데…」   


「오, 처음부터 특종?」   


「사실 시호랑 시즈카는 사귀고 있어. 거기에 미라이가 끼어들어 삼각관계인 상태고」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는 자신의 아이돌로 망상을 하며 그것을 아이돌에게 강요하고 있다, 고」   


「미안미안. 농담이야. 제대로 말할게, 제대로」   


「한 번만 더 장난치면 인간쓰레기로 만들어주겠어」   


「좀 봐주십쇼, 네」   



스즈야가 웃는다. 나도 스즈야를 따라 웃었다. 5분 간의 짧은 인터뷰. 그 분위기를 즐기며 가슴 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는다. 그것이 스즈야가 원하는 정보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말이다.  



○●   



「프로듀서씨가 이상해」   



또 이 패턴인가. 시즈카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수건으로 얼굴을 뒤덮었다. 시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건을 잡아 뒤로 던지고는 시즈카를 노려보았다.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듣고 있어」   


「그게 듣는 사람의 태도야?」   


「귀는 열려있으니까」   



라이브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또 그런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니. 물론 실력은 의심치 않지만 집중해야 할 때는 집중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는 또 뭔데?」   


「태도는 마음에 안 들지만 바쁘니 일단 넘어가줄게. 아까 프로듀서씨가 여자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봤어」   


「프로듀서가?」   


「그래. 리오씨랑 비슷한 머리 색깔에 정장을 입은 여자」   


「리오씨랑 비슷한 머리 색깔…아!」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시즈카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알고 있구나?」   


「아마 기자일 거야. 일주일 전에 내가 인터뷰를 한 거 기억나지?」   


「그랬었지. 굉장히 만족스러운 인터뷰였어. 질문도 알차고 대답도 무난했지. 기자가 꽤나 솜씨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 사람일 거야. 그 사람 765 프로덕션을 전담 하게 됐다고 했으니 지금 여기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흐~응」   


「대답이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보네?」   


「아니, 참고가 됐어. 그리고 시즈카」  

 

「한번 더 물어보는데 그 인터뷰날 정말 아무 일 없었지?」  



시호의 질문을 듣고 시즈카는 짜증스럽다는 듯 신음소리를 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듣는 질문이다.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그 질문에 시즈카는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 날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잘 들어, 시호. 이게 마지막이야. 더 이상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시즈카가 보여주는 단호한 태도에 시호도 결국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엄지를 손으로 가져가 깨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뭔데?」   


「일단 라이브에 집중하도록 해. 시호 널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야. 난 밖에서 쉬고 올 테니 조금 있다 집합할 때 보자」   


「그래」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를 흔들며 무대 뒤로 향하는 시호를 시즈카는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물론 시호의 프로의식과 실력은 알고 있지만, 리더로서는 좀 더 라이브에 집중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납득이 갈 리가 있나」   



아이돌 대기실로 향하며 시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시즈카의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호도 그 여자의 차림새와 손에 든 수첩을 봤을 때 그 여자가 기자라는 것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호가 궁금한 것은 그 여자의 직업이 아니었다. 그 여자한테 보여주는 프로듀서의 태도였다.    


자신의 상사를 이렇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프로듀서는 사람을 잘 믿지 않았다. 인간불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선을 그어놓고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타인이 그 선을 넘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런 프로듀서가 여성 기자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어있는 미팅실에 단 둘이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갈 때도 앞에 여성이 있으면 세, 네칸은 떨어져서 걷는 프로듀서가?  


시즈카가 말하는 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게 아니다. 그 인터뷰 날을 기점으로 이상했던 프로듀서의 행동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즈카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 기자가 최근 프로듀서의 이상한 태도를 설명해 줄 키인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은 대비해 두는 게 좋겠지...」  



어쩌면 고양이들이 캣파이트를 하고 있는 곳에 호랑이라는 맹수가 끼어든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양이들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대적 불가능한 맹수가…  


시호는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 소리는 시호의 마음을 대변하듯 빠르게 그리고 짧게 울리고 있었다.  



○●  



옷깃을 한 번 가다듬고 단상 앞으로 향한다.   

실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아이돌, 스태프, 기자…  

그 압박감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뭐, 기본 몇 백, 몇 천 명 앞에 서는 아이돌이 받는 압박감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앞에 놓여있는 잔을 잡는다. 내가 잔을 가슴께로 들어 올리자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히 내 가슴께로 향한다. 그것이 재미있어서 잔을 얼굴까지 들어 올렸다 내렸다. 입꼬리가 괜히 올라간다.   



「라이브가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이 라이브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의 도움과 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수고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 자리를 마련했으니 모두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곧 회장은 이야기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일을 성공리에 마친 후 즐기는 만찬만큼 좋은 것이 있으랴…  






「XXX사의 하코다테 기자입니다. 인사말이 너무 정석적이고 판에 박힌 것 같은데, 바꿔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스즈야가 다가와 택도 없는 시비를 걸어왔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잘 하지 못하는데 억지로 바꾸려하는 것은 욕심 아닐까요?」  


「그 말이 예능계에 과연 어울릴까요? 예능계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제 귀에는 그 말이 765 프로덕션은 현재에 안주하면서 변화를 가져갈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개인적으로 예능계에서 변화에 뒤처진다는 것은 사망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프로덕션을 이끄는 프로듀서로서 가져도 괜찮은 신념인지 의심이 가는데요」  


「제가 말하는 기본은 바로 토지와 마찬가지입니다. 토지에서는 다양한 작물이 자랍니다. 토지가 기본이라면 다양한 작물은 바로 변화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을 추구한다고 해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바탕이 되어야할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기본이 튼튼하지 못하면 아무리 변화를 추구한다고 해도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그 말은 꼭 765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인 아마미 하루카를 꼬집어 말하는 것 같군요?」  


「아까부터 이상한 트집을 잡으시는 것 같은데, 기자가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물어보고 싶군요. 취재를 위한 질문이 아니라 화풀이 같은데…」  


「그럼 저도 하나 묻고 싶군요. 아이돌 소속사가 기자한테 잘못 된 정보를 넘겨도 괜찮은지 말이죠」  


「오, 알아채셨군요?」  


「제가 그 정도도 조사 안 해봤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살짝 곯려줄 생각이었는데 역시 만만치 않으시군요」  


「제가 그것을 발견 못했다면 꽤나 난처해졌을 것 같은데…이번 기사 기대하셔도 괜찮을 거예요」  


「……」  


「……」  


「하하하하」  


「후후후후」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우리가 뿜어내는 분위기에 질려,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우리 주위에서 물러난다. 뭐, 장난은 이 정도까지만 하고…  



「오늘 라이브, 멋졌습니다. 이번 라이브 이름이 왜 꿈의 경연이지 알 수 있었어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아이돌을 데리고 계신 것 같아요. 약소 프로덕션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인재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저로서는 하코다테씨도 아이돌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어떠신가요? 한 번 도전해보시겠습니까? 요즘 20대 후반의 아이돌도 적은 건 아니거든요」  



내 말에 스즈야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곧 표정을 바꾸어 씨익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많이 대담해지셨군요?」  


「옛 말에 남자는 3일 정도면 괄목상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후후. 옛말은 역시 틀린 게 없는 것 같네요」  



잔을 들어 스즈야를 향해 내민다.   



「그럼 준비한 것은 적지만 뒷풀이, 재밌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네」  



잔을 부딪치고 잔에 든 음료수를 그대로 마신다. 잔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어머낫」  



스즈야가 비틀거리며 나에게 안겨왔고 나는 순간적으로 쓰러지려고 하는 스즈야를 안았다.  



「아, 죄송해요. 다리가 꼬여서…」  


「아닙니다. 안 다쳤으면 된 거죠」  



그렇게 말하며 스즈야를 똑바로 세우려는 순간, 안겨 있던 스즈야가 귓속말을 해왔다.  



「오늘 뒷풀이 끝나고 너네 집으로 갈게」  


「뭐?」 



반문하는 나를 무시하고 스즈야는 그 말만을 한 채 다시 똑바로 섰다.  



「고마워요. 덕분에 다치지 않았어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스즈야.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멍하게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뺨을 한 번 때려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인사를 돌리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 오늘은 일찍 못 자겠는데.  



○●  



주변은 떠들썩했다. 이제 몇 번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많이 한 뒷풀이지만, 할 때마다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뒷풀이였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성취감, 기쁨, 지나가버린 슬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이 바로 이 뒷풀이였다. 시즈카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듯 크게 심호흡을 했다. 다음에도 무사히 이렇게 뒷풀이를 맞이할 수 있기를…시즈카는 그렇게 빌며 그릇에 우동면을 담기 시작했다.   


「……」  


「뭐해?」  



우동을 만들어 식탁으로 돌아오니, 시호는 가져온 음식을 먹지 않고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시즈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어봐도 묵묵부답. 시호의 시선을 따라간 시즈카는 그 끝에 있는 인물들을 보고서야 시호가 그러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프로듀서와 그 기자가 있었다.  


시호를 따라 그 둘을 바라보던 시즈카는 얼마 안 있어 위화감을 느꼈다. 서로 웃으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저 두 사람이 저렇게 친했던가? 분명 그 때 헤어질 때만해도 프로듀서는 저 기자를 굉장히 껄끄러워 했었는데? 마치 그 모습이 거짓말 같이 두 사람은 친근함을 주위에 과시하고 있었다. 연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시즈카가 봐도 두 사람이 내뿜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큭」  



옆에서 들리는 짧은 신음소리. 혹시 피가 배어나오지 않을까 걱정 될 정도로 꽉 쥔 주먹. 순간 아이돌이 해서는 안 될 표정을 지었던 시호는 곧 표정을 되돌렸다. 시즈카는 그 모습을 보고 시호의 프로의식에 대해 감탄했다. 그리고 다시 시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두 사람은 안고 있었다. 정황상 넘어질 뻔했던 기자를 프로듀서가 잡아준 것으로 보였지만 시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일부러 그랬어」  


「시호?」  


「시즈카, 못 봤어? 저 기자, 넘어질 만한 것도 아니었는데 일부러 프로듀서씨 쪽을 노려서 넘어졌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억측인 게…」   


「아니, 내 말이 맞아. 너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은 못 봤겠지만, 난 저 기자가 프로듀서씨한테 안겨서 무언가를 소곤거리는 것까지 봤어」  



아무래도 시호의 경계심은 최고 수위까지 올라간 것 같았다. 시즈카는 그것에 동감할 수는 없었지만 의문은 남아있었다. 대체 2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두 사람의 사이가 저렇게 가까워진 거지?  


    

「시즈카」  


「응?」  


「너 저 기자랑 인터뷰를 했었지? 그렇다면 안면은 튼 사이겠지?」  


「그, 그렇지?」  


「좋아, 그럼 따라와」  



시호는 거칠게 시즈카의 손목을 잡고 스즈야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 시호!?」  



시즈카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하자, 시호는 한숨을 한 번 쉰 뒤 몸을 돌려 시즈카의 양어깨를 잡았다.  



「조용히 해. 시즈카,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저 저 기자에게 인사를 하고 나를 보이기만 하면 돼. 그럼 그 뒤는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알겠어?」  


「가, 갑자기 왜 이러는데?」  


「보고 있으면 자연히 알게 될 거야. 그러니 지금은 그냥 내가 말한 대로 해줘. 빚은 나중에 갚을 테니. 알겠지?」  


「으, 응」  



시호가 내뿜는 박력에 시즈카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고등학생한테서 이런 박력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시즈카는 진지하게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 시호에게 끌려갔다. 





「이 오렌지에이드는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어머?」  



혼자서 조용히 오렌지에이드를 품평하고 있던 스즈야는, 자신에게 다가온 두 사람을 보고 크게 놀랐다. 라이브의 주역이었던 아이돌 두 명이 자신을 불렀던 것이다.   



「아, 그러니까…그래, 하코다테씨! 하코다테씨, 오랜만에 뵙네요」  


「안녕하세요, 모가미씨. 그렇네요. 그 때는 인터뷰에 성실히 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기사는 보셨나요?」  


「네, 봤어요. 아주 충실한 기사더군요. 보고 감탄했어요」  


「후훗. 그거 감사하네요. 며칠 밤을 샌 보람이 있네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은 칭찬을 했답니다. 제 친구 시호도…」  


「안녕하세요. 키타자와 시호라고 합니다」  



시즈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 있던 시호가 치고 나와 스즈야에게 인사를 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XXX사의 연예부 기자 하코다테 스즈야라고 합니다」  


「이름 많이 들었습니다. 저번에 했던 인터뷰의 질문을 보고 정말 감탄했었어요. 프로듀서도 굉장히 만족해 했었고요」  


「후훗, 감사합니다」  



웃으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스즈야. 무심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호는 한순간 숨이 멎는 듯 했다.  



「시호?」  



시호가 가만히 있자 이상하게 여긴 시즈카가 시호를 부른다. 시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새하얗게 변한 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즈야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것들이 전부 날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왜 그래? 피곤해?」  


「으, 응.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아쉽네요.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어느새 수첩을 꺼낸 스즈야가 진심으로 아쉬운 듯 말했다. 키타자와 시호는 765 프로덕션의 간판 아이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스즈야로서는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눠 소스를 뽑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했다.   



「시호가 많이 피곤한 것 같으니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나눠야겠네요」  


「아쉽지만 그렇게 해야겠네요. 그럼 다음에 꼭 뵙도록 해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시호, 나한테 기댈래?」  


「아니, 잠시만. 저기, 하코다테씨.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할 수 있을까요?」  


「키타자와씨가 저에게? 뭐,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요」  


「감사합니다. 제가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러는데, 그 머리핀은 어디서 구하셨나요?」  


「아, 이 머리핀요? 후훗, 어려운 질문을 하실 줄 알았는데…이 머리핀은 저의 소중한 사람이 만들어 준 거랍니다. 저한테는 행운의 소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그랬군요. 아쉽네요. 파는 곳을 알면 저도 한 번 사볼까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런 하찮은 질문을 해서」  


「아니에요. 아이돌, 그리고 그 나이대 소녀다운 귀여운 질문이었어요. 765 프로덕션이 어떤 곳인지 다시 한 번 알게 되네요. 후훗」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즈카, 도와줄래?」  


「으, 응」  


「그럼 다음에 봬요~」   



시호와 시즈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스즈야는 그녀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머리핀을 만지면서 속삭였다.  



「키타자와 시호라고 했던가? 프로필만 봐서는 그냥 쿨한 여자애인 줄 알았는데…생각보다 대담하네?」  


「P, 생각보다 인기 있는가봐? 후훗」  


「…하지만 섣불리 넘길 생각은 없어. 다시는…다시는 다른 사람 때문에 그를 떠나보내지 않을 거야」  



스즈야는 탁자에 놓아뒀던 오렌지에이드를 다시 들었다.  



「역시 달아. 너무 달아. P가 싫어하는 맛인걸. 후훗」  






「다왔어, 시호」  


「고마워, 시즈카」  


「정말 괜찮아? 아까까지는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피로가 갑자기 몰려왔나봐」  


「프로듀서한테 말할까?」  


「아니, 됐어. 여기서 쉬고 있을게. 아마 쉬면 괜찮아 질 거야. 프로듀서씨도 바쁠 텐데, 걱정을 끼칠 수는 없어」  


「하지만…」  


「괜찮아, 시즈카. 그것보다 혼자 있게 해줄래? 머리가 울려」  


「그래, 알겠어」  



시호가 소파에 눕는 걸 본 시즈카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곧장 회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호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시즈카는 친구이자 동료로서 그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시호에게 혼나기야 하겠지만 그건 그 때 일. 친구의 몸이 시즈카한테 있어서는 더 중요했다.   


시즈카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시호는 소파에서 일어나 문 쪽을 살폈다. 시즈카의 발소리가 곧 멀어지자 시호는 몸을 일으켜 화장대로 다가갔다.  



「그 여자!」  



있는 힘껏 화장대를 내려친다. P가 봤으면 놀라 까무러쳤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호는 폰을 꺼내 들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잠금화면이 사라지고 바탕화면이 나타난다. 시호의 동생 릿군이 못생긴 삼색 고양이 인형을 안고 있는 사진. 평소라면 그 사진을 보며 안식을 얻던 시호였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릿군이 안고 있는 삼색 고양이 인형. P가 시호의 생일 날 만들어줬던 인형. 자기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모델로 삼았다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인형이라는 걸 강조하던 P. 시호는 뿌드득 이를 갈았다. 그 여자는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이 하고 있던 삼색 고양이 머리핀을 말이다.   


그 여자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시호가 왜 접근했으며 시호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그렇기에 굳이 소중한이라는 단어를 붙여 대답을 했을 것이다.   


시호는 몸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그 둘은 절대 단순한 비즈니스적 관계가 아니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아니, 그것보다 더욱 가까운 관계처럼 보였다. 회장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는 끼어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회장에 둘 만이 있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시호는 심호흡을 했다. 여기서 화만 내서는 해결 되는 것이 없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이렇게 있다가는 P를 눈뜨고 뺏길 상황이었다. 숙녀협정이니 뭐니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여보세요? 시호입니다. 네, 심각한 이야기에요. 사실은…」  



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시즈카가 P를 데려올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