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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아이마스

1-2. 펜은 칼보다 강하다

by 기동포격 2020. 7. 6.

시즈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시즈카가 상체를 내밀며 더욱 사납게 노려본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알겠어! 한 달! 더 이상은 안 돼!」


「후우…알겠어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 정도에서 용서해 드릴게요」



말과는 다르게 시즈카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그에 비해 나는 난감 그 자체. 


스즈야와 재회하고 이틀 뒤.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던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일찍 출근한 시즈카한테 잡혀 자신이 시호한테 얼마나 시달렸는지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말을 할수록 톤과 목소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시달렸나 보다. 그렇게 속사포처럼 불만을 쏟아내던 시즈카는 20분쯤 지나서야 숨을 거칠게 쉬며 연설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나한테 그 대가를 지불하라며 나와 협상을 시작했다.


시즈카의 요구는 세달 동안 주말에 우동을 사줄 것. 나는 바로 난색을 표했다. 주말에 우동을 산다. 그것도 아이돌에게. 얼핏 보면 우동을 사주면서 아이돌과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시즈카는 우동을 좋아한다. 그리고 우동을 좋아하는 만큼 우동에 대하여 엄격하고 깐깐하다. 즉 시즈카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우동을 찾는 것부터가 굉장히 고역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시즈카는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이돌. 아무리 변장을 한다고 해도 사람이 많을수록 들킬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사람이 적은 곳일수록 좋다. 종합하면 우동이 맛있으면서 사람이 적은 곳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곳을 나는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미 도쿄 주변은 샅샅이 뒤져보았다. 잘못하면 관서지방, 아니 1박까지 할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이 정도면 큰 발전인가’



소파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잡지를 읽고 있는 시즈카를 본다. 시즈카가 765 프로덕션에 입사했을 때, 이러한 관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765 프로덕션에 막 입사한 시즈카는 칼처럼 날카로운 아이였다. 다가가면 베일 듯이.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자신이 먼저 외출을 권유할 정도로 많이 둥글어졌다. 마음의 짐도 그 사건 이후 대부분 내려놓은 듯하다. 당시의 시즈카를 데려와 지금의 시즈카를 보여주면 과연 어떻게 될까? 물러 터졌다고 크게 야단치지 않을까? 


주말에 둘이서 외출을 한다라…그만큼 시즈카가 나를 믿어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은 걸까?



「아, 맞다…시즈카」


「네?



시즈카가 잡지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본다.



「고마워」


「고맙…다니요?」



나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시즈카는 당황스러워 한다.



「약속을 지켜줬잖아. 비밀로 해달라는…」


「아~」



그제야 납득한 듯 입을 벌리는 시즈카.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약속을 한 이상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인사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인사보다 주말에 한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래그래. 멋진 곳을 찾아놓을 테니 기대하도록 해」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시즈카를 보니 나 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평온한 일상 도중에 가끔 일어나는 사소한 이벤트. 몸을 뒤로 젖히며 천장을 쳐다본다. 더도말고 더도말고 이런 나날이 계속되면 좋을 텐데….



부르르



나도 모르게 플래그를 꽂아버렸군. 화면에 뜨는 스즈야의 이름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카페 입구 앞에서 난 한창 고민 중이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다시 돌아가느냐. 스즈야는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실 내가 스즈야와 만나줘야 할 의무는 없다. 옛날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지금 단순한 비스니스 관계다. 


하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녀는 기자이다. 


아이돌은 인기를 먹고 산다. 그렇기에 여론이 중요하고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스즈야가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권유를 거절한 것 때문에 악감정을 품고 765 프로덕션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라도 쓴다면…


고개를 흔든다. 지나친 생각이다. 스즈야는 절대 그럴 리 없다. 

문을 잡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야」



카페로 들어가니 한 쪽 구석에 앉아 있던 스즈야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음료는 이미 시켜놨어. 아메리카노 맞지?」


「그래」



자리에 앉으면서 대답하자 스즈야가 싱긋 웃는다.



「아직도 안 변했구나. 그 단맛을 싫어하는 버릇」


「단맛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것뿐이야」


「아버지가 당뇨병을 앓고 계셨지? 요즘은 어때? 악화되지는 않으셨어?」


「다행히 관리를 잘하고 계셔서 아직까지는 아무 이상 없어…고마워」


「다행이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아메리카노가 내 앞에 나와서야 나는 스즈야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카페에서와는 달리 파란색과 흰색을 섞은 캐주얼한 차림. 머리에 살짝 넣은 웨이브. 그리고…삼색 고양이 머리핀.



「여기 커피가 참 맛있어. 한 번 마셔봐」



스즈야의 성화에 커피를 입으로 가져간다.



「오…」



절로 나오는 감탄사. 스즈야가 말한 대로 확실히 무언가 달랐다. 



「취재를 하다가 알아낸 곳이야. 어때, 괜찮지?」


「그래.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내 취향이라고 해야 하나?」


「뭐야, 그 추상적인 표현」



스즈야가 입을 가리고는 쿡쿡거리며 웃는다.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스즈야의 모습에서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


「……」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앞에 앉아 있는 스즈야한테서는, 며칠 전의 인터뷰에서 보여줬던 그 기 센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


「응?」


「양복…입고 나왔네」


「오늘 출근했었거든. 라이브가 일주일 남았는지라 이것저것 준비해야할 게 많아서」


「토요일까지 출근하다니, 블랙회사네」


「뭐, 부정할 수는 없군」


「……」


「……」



다시 한 번 더 흐르는 침묵. 남자인 내가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있을 때, 오렌지에이드를 빨대로 젓고 있던 스즈야가 입을 떼었다.



「솔직히 말하면…오늘 안 올 줄 알았어」


「…어째서?」


「아, 뭐랄까. 저번에 내가 너무 심술궂게 굴었나 싶기도 해서…P도 결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텐데 좀 골려주고 싶었거든. 옛날 기억이 막 떠올라서」


「그래서 그게, 뭐라고 해야 하나…미안해」


「……」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스즈야가 한 말을 들으니 자신이 왠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스즈야도 자신도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녀도 겉으로는 강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생각을 많이 하는 타입이니까.



「스즈야!」



탁자를 가볍게 내려친다.



「응!?」



스즈야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나가자! 이렇게 앉아서 이러쿵저러쿵 대는 건 전혀 우리답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스즈야도 당황하며 덩달아 일어난다.



「계산은 내가 할 테니 먼저 나가 있어. 그리고 스즈야…」



계산대로 가던 나는 뒤돌아



「핀 잘 어울려」



그렇게 말하고 머리를 가리키며 씩 웃었다.



「…아」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던 스즈야는



「후훗. 누가 만들어 준 건데. 잘 어울리는 게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어줬다. 

그래. 넌 옛날부터 그렇게 웃는 게 잘 어울렸다. 내가 아는 누구보다 웃는 얼굴이 예쁜 너였다. 그래, 그 누구보다.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그 미소는 아직 내 것일지도 모르는데…








카페를 나서자마자 스즈야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머리를 기대어 왔다. 난 그 팔짱을 굳이 풀지 않고 그대로 놔둔 채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을 배경 삼아 우리는 인파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P는 흰색이 어울린다니까」


「아니, 흰옷은 관리가 힘들어. 그리고 난 검은색이 좋다고」


「검은색만 입으니 사람이 칙칙해 보이지」


「하아? 검은색은 사람을 차분하고 지적이게 보이게 만들어 주거든요?」


「푸흐흡. 차분…지적…스스로 말하고도 부끄럽지 않아?」


「시끄러!」


「아하하하하하하하」



쇼핑을 하고



「이거 어때?」


「이제 리본은 좀 부담스러운 나이지 않나? 아야, 아야! 찌르지 마!」


「섬세함을 좀 배우시죠, 선생님. 정말 아이돌 프로듀서 맞아?」


「그 말 많이 듣지」


「아니, 뭘 우쭐해 하세요. 칭찬하는 거 아니거든요?」



액세서리를 고르고



「자, 아앙」


「아니, 내가 직접 먹을게」


「왜 이리 빼실까. 설마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살면서 쑥맥인 건 아니지?」


「여자가 아니라 아이돌이야. 남이 들으면 오해할 말 하지 마. 그리고 쑥맥도 아니고」


「그럼 자」


「그러니까 내가 직접 먹는다니까」


「아~앙」


「하아…아앙」


「어때, 맛있어?」


「마시넹」 



노점음식을 나눠먹고



「몬헌 샀어?」


「회사일이 바빠서 못 샀는데…」


「동숲은?」


「역시 회사일이 바빠서…」


「파판7은?」


「회사일…」


「인생을 왜 산다 생각해?」


「일하기 위해?」


「하아…일단 다 사자」


「얌마. 할 시간 없다니까」


「시간이야 만들면 되는 거야」


「아, 맞다」


「라오어2는 샀어?」


「장난해?」



게임샵도 들르고



「건배!」


「건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주점에서 술까지.

마치 대학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후우~」


「그러니까 적당히 마시라니까」


「하~지~만~」



스즈야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술도 약한 아이가 왜 이렇게 많이 마셨는지. 도중부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쉬지도 않고 마셔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잔을 빼앗고 억지로 가게를 나왔다.



「……」


「…스즈야?」


「……」


「스즈야. 너 설마」



불러도 대답이 없다.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재빨리 주저앉아 상태를 살핀다. 스즈야는 어느새 숨을 자그맣게 쉬며 잠들어 있었다.



「역시…」



난감하다. 난 지금 스즈야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옛날 자취방이야 아직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지만 아직도 거기서 살고 있을 리는 없다. 폰은 비밀번호를 모르고 지갑이나 가방을 함부로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지」



스즈야를 일으켜 어깨에 들쳐멘 뒤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 태우고 우리 집 주소를 말한다. 우리 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택시의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가까운 모텔에 던져놓고 가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러한 짓을 할 위인이 못 되었다.



「이번 만이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스즈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야야…」



스즈야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속으로 머리를 찌르는 두통을 욕하며 평소 침대 머리맡에 두는 진통제를 찾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스즈야는 위화감을 느끼고 몸을 급히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덮고 있는 이불, 누워있는 침대.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으음…」



옆에서 들려오는 정체모를 남자의 목소리에 스즈야는 황급히 일어나 문 쪽으로 몸을 피했다. 언제든 나갈 수 있게 손잡이를 잡고 혼란에 빠진 머리를 정리한다.   


어제 뭘 했었지? 카페에서 P를 만났고 거리를 돌아보면서 오랜만에 데이트 하는 기분을 느꼈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점에 가서 술을…기억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스즈야는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그래, 마지막에 P와 주점에서 술을 마셨어.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아마 또 폭주해서 주량을 넘겨 마셨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회식자리도 피하는 편이었는데, 오랜만에 P를 만났다는 기쁨 때문에 스스로 리미트를 풀고 폭주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기억을 정리하고서야 스즈야는 방을 둘러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방을 둘러본 스즈야는 이곳이 P의 방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벽에 무수히 붙어 있는 점착 메모지와 옷장, 책상, 컴퓨터만이 존재하는 심플한 가구. 자신이 알고 있는 옛날 P의 자취방과 그렇게 다른 점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스즈야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이불 곁으로 다가갔다. 확신은 하고 있지만 확인은 해봐야 하는 법. 이불을 살짝 내리니 드러나는 P의 얼굴. P를 잠시 쳐다보던 스즈야는 손가락으로 볼을 세 번 찌른 뒤 싱긋 웃으며 조용히 방을 나섰다.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어간다.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주위의 사진을 찍고 아파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지 않게 눈에 꼭꼭 담아둔다. 다시 한 번 이 거리를 찾아올 수 있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것은 펜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펜은, 그 누구보다 잉크를 갈구한다. 함께 생을 다 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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